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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물info

니베아(NIVEA) 브랜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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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베아의 정의 및 기원


니베아(NIVEA)는 스킨 케어, 바디 케어, 립 케어 제품 등을 제조ㆍ판매하는 독일의 화장품 브랜드이다. 파울 카를 바이어스도르프(Paul Carl Beiersdorf)가 1882년에 독일 함부르크(Hamburg) 지역에 의약품 회사인 ‘바이어스도르프(Beiersdorf)’를 설립했고, 1890년에 오스카 트로플로비츠(Oskar Troplowitz)가 이 회사를 인수했다. 바이어스도르프는 1911년에 회사 소속의 이작 리프쉬츠(Isaac Lifschutz) 박사가 발견한 ‘유세릿(Eucerit, 유화제의 일종)을 활용하여 첫 번째 화장품 제품인 ‘니베아 크림’을 출시했다. 니베아라는 브랜드 이름은 ‘눈처럼 하얀(White as Snow)’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니비우스(Nivius)’에서 유래한 것으로 티끌 하나 없는 니베아 크림의 외형을 의미한다고 한다.


2. 니베아의 탄생 및 설립자


파울 카를 바이어스도르프는 베를린(Berlin) 근교의 작은 도시인 노이루핀(Neuruppin)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대학에서는 약학을 전공했다. 1880년 파울 카를 바이어스도르프는 함부르크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겨 약국을 차렸다. 그는 약국 옆에 실험실을 만들고 여러 가지 제약 실험에 몰두했다.


1882년 파울 카를 바이어스도르프는 피부과 전문의 파울 운나(Paul Unna) 등의 연구진과 함께 새로운 상처치료 밴드인 ‘구타페르카 석고 가제(Guttapercha Plaster Gauze)’를 개발해 특허 등록을 했고, 특허 취득 날짜인 1882년 3월 28일을 바이어스도르프의 설립일로 지정했다. 1883년 파울 카를 바이어스도르프는 알토나(Altona) 지역에 작은 공장을 설립하고 특허기술을 기반으로 여러 종류의 플라스터(Plaster, 붕대·반창고류) 제품을 출시했다. 1890년 파울 카를 바이어스도르프는 회사 이름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약학 박사였던 오스카 트로플로비츠(Oscar Troplowitz)에게 바이어스도르프를 넘겼다.


오스카 트로플로비츠는 바이어스도르프를 인수한 후 생산 설비를 먼저 정비했다. 그는 1892년 함부르크 지역에 공장을 설립해 현대적인 생산설비를 들여왔고, 기존 연구 인력과 함께 고약, 상처치료제, 치약, 구강 세정제 등 제약 분야의 다양한 상품을 추가로 개발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1893년에 미국의 제약 회사인 렌앤핑크(Lehn & Fink)와 무역 협정을 맺어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오스카 트로플로비츠는 파울 운나의 소개로 이작 리프쉬츠 박사를 회사에 영입했다. 1911년 이삭 리프슈츠 박사는 새로운 유화제 성분인 ‘유세릿(아름다운 왁스라는 의미)’을 개발했고 그 해 오스카 트로플로비츠는 이 유화제를 활용해 ‘니베아 크림’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니베아’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3. 니베아의 역사


1) 니베아 크림 출시 ~ 패키지 리뉴얼 전(1911~1925)

니베아 크림이 출시되기 전, 시중에 판매되었던 크림은 기름 성분으로 만들어진 연고나 고약이 전부였다. 이 제품들은 발랐을 때 기름기가 돌아 수시로 얼굴을 닦아 주어야 했다. 니베아 크림은 기름과 수분이 혼합된 제품으로 기존의 단점을 해결하여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바이어스도르프는 니베아 크림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가 높아지자 1915년 함부르크 지역에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여 니베아 브랜드의 제품 라인을 확대했다. 1919년에는 니베아 비누(Nivea Soap)를, 1920년에는 니베아 헤어밀크(Nivea Hairmilk) 등을 출시했고, 1922년에는 남성 면도용 비누(Shaving Soap)를 시장에 선보였다. 1927년에는 하얀 피부를 선호하는 아시아 소비자들을 겨냥하여 미백 스킨케어 라인을 출시했다.


바이어스도르프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시작되기 전까지 멕시코, 러시아, 프랑스 등 29개국에 진출했지만 독일이 주축을 이룬 동맹군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바이어스도르프는 해외 진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1918년 오스카 트로플로비츠가 돌연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내인 프라우 트로플로비츠(Frau Troplowitz)가 회사의 경영을 맡았으나 그녀 역시 1920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1922년 1월에 오스카 트로플로비츠의 이복동생이자 법률 고문이었던 오토 한스 멘키비츠(Otto Hanns Mankiewicz)가 바이어스도르프를 주식회사로 전환시켰다. 같은 해에 화학자 출신의 윌리 자콥슨(Willy Jacobsohn)이 바이어스도르프의 새로운 CEO로 취임했다.


2) 패키지 리뉴얼 ~ 하위 브랜드 출시 전(1925~1985)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대에 들어 사람들의 인식과 생활양식은 크게 변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증가했고 바캉스 같은 야외활동도 늘어났다. 니베아는 1925년에 패키지를 대대적으로 리뉴얼 했는데, 이때부터 니베아는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자가 심플하게 새겨진 ‘블루틴(Blue Tin)’ 패키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니베아는 1930년대에 꾸준히 제품 영역을 확장해 야외용 선탠 로션(Suntan Lotion)을 비롯해 면도 크림(Shaving Cream), 얼굴 토너(Facial Toner), 샴푸(Shampoo) 등을 잇달아 출시했다. 이 제품들은 세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30년 바이어스도르프는 전 세계 23개국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여 니베아를 글로벌 시장에 공급했다.


제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당시 바이어스도르프는 독일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윌리 자콥슨을 포함해 유대인 직원들이 회사에서 퇴출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윌리 자콥슨은 CEO로 재임되었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이 독일군의 패전으로 끝남에 따라 미국, 영국 등의 전쟁 가담 국가들은 독일 업체들이 자국에서 얻은 자산과 특허권 그리고 상표권을 백지화했다. 이후 바이어스도르프는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니베아의 상표권을 사들이며 판매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1940년대 말 독일의 경제 상황이 회복됨에 따라 바이어스도르프도 함부르크 지역의 주요 공장 시설을 다시 재건 하여 정상적으로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1950년대 말 니베아에 대한 소비자의 인지도가 올라감에 따라, 바이어스도르프는 니베아 브랜드를 활용해 상품 라인을 확장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후 니베아를 엄브렐라 브랜드(Umbrella Brand, 각각의 브랜드를 우산처럼 포용하고 있는 모브랜드)로 두고, 다양한 스킨 케어 제품들을 하위 브랜드로 출시하게 되었다.


1960년대 경제 부흥기가 도래하여 여가를 즐기는 바캉스족이 늘어났다. 니베아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서 선스크린 및 선케어 제품을 확대하여 생산하기 시작했다.


3) 하위 브랜드 출시 시작 이후(1985~2013)

1980년대 유럽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바이어스도르프는 니베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가 매우 높고, 니베아의 하위 브랜드들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바이어스도르프는 니베아의 후광효과를 활용해 보다 다양한 하위 브랜드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바이어스도르프가 출시한 제품에는 니베아 맨즈 케어(NIVEA Men’s Care, 1986), 니베아 헤어 케어(NIVEA Hair Care, 1991), 니베아 데오(NIVEA Deo, 1991), 니베아 바디 케어(NIVEA Body Care, 1992), 니베아 선(NIVEA Sun, 1993), 피부관리 제품인 니베아 바이탈(NIVEA VITAL, 1994), 니베아 뷰티(NIVEA Beauté 1997), 니베아 핸드 케어(NIVEA Hand Care, 1998), 니베아 배스 케어(NIVEA Bath Care, 1996), 그리고 주름개선 크림인 코엔자임 큐10(Coenzyme Q10, 1998) 등이 있다. 지금까지 하위 브랜드를 포함하여 니베아에서 파생된 제품들은 총 500여 종에 이르고 있다.


4. 니베아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1) 유세릿

1911년 바이어스도르프의 이삭 리프슈츠 박사는 양모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해 최초의 유화제(기름과 물의 혼합물)를 개발했다. 이삭 리프슈츠 박사는 이 유화제에 ‘아름다운 왁스’라는 뜻의 ‘유세릿’이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던 크림은 바세린이나 밀랍 등의 기름 성분을 굳혀 만든 연고나 고약 형태가 대부분이었고, 피부에 발랐을 때 불쾌한 향과 번들거림을 주었으며 유통기한 또한 길지 못했다. 세계 최초의 유화제인 유세릿은 물과 기름을 혼합시켜 안정적인 에멀젼(Emulsion, 기름 성분과 워터 성분의 혼합물) 형태로 만들어졌고, 이는 번거로움 없이 피부에 유수분을 공급해 줄 수 있었으며 유통기한도 길었다.


유세릿은 처음에는 의학적인 치료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오스카 트로플로비츠는 이 성분이 화장품에 적용되었을 때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측하고 화장품을 개발하게 되었다. 1911년 오스카 트로플로비츠(Oscar Troplowit)는 이삭 리프슈츠(Isaac Lifschutz) 박사, 파울 운나(Paul Unna) 박사와 함께 유세릿(Euceri)을 활용해 에멀젼 크림을 만들었고 ‘니베아(NIVEA)’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그 후, 니베아 크림은 바이어스도르프(Beiersdorf)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유세릿을 첨가하여 만든 에멀션은 모든 보습제 화장품의 기초 성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1911년 바이어스도르프의 이삭 리프쉬츠 박사는 세계 최초의 유화제인 유세릿을 개발했다.

5. 니베아의 대표 상품


니베아는 크림을 필두로 바디 케어, 립 케어, 선 스크린, 데오드란트 등의 카테고리에서 500여 가지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 니베아의 대표 상품은 니베아 크림, 데오드란트, 립 케어 제품 등이 있다.


1) 니베아 크림

‘블루틴(Blue Tin)’으로 유명한 니베아 크림은 1911년에 유세릿을 화장품에 적용해 출시했을 당시에는 여성 전용 크림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바이어스도르프는 우아하고 고상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니베아 크림 용기에 노란색을 바탕으로 아르누보(Art-Nouveau)풍의 문양을 입혔으며, 로고는 고전적인 필기체를 사용했다. 1922년 한 차례 로고에 대한 리뉴얼 작업이 있었지만 니베아 크림의 용기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블루틴(Blue Tin)’은 1925년에 처음 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현대적인 생활양식이 사회 전반에 등장하면서 니베아도 대대적인 패키지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다. 리뉴얼 후 니베아의 패키지는 오늘날과 같이 파란색 바탕에 흰색의 모던한 서체를 적용한 형태로 교체되었다.


2) 니베아 데오드란트

바이어스도르프는 1991년에 니베아 데오(NIVEA Deo, 니베아의 하위 브랜드)라는 데오드란트 제품(땀 냄새 억제 제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국내 시장에서는 니베아의 하위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니베아 데오드란트의 경우에는 국내 시장의 냄새 제거제 부문에서 7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3) 니베아 립 케어

바이어스도르프의 립 케어 제품은 니베아 크림보다 빠른 1909년에 ‘라벨로(Labello)’라는 브랜드로 출시되었다. 1990년에 니베아의 하위 브랜드 ‘니베아 립 케어(Nivea Lip Care)’로 출시되었고, 국내에는 1997년에 소개되었다.


첫 번째로 출시했던 튜브 타입의 립 에센스가 입술 보습제로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바이어스도르프는 립 버터(Lip Butter, 에센스와 연고의 중간 타입), 립 밤(lip Balm, 연고 타입) 등 좀 더 다양한 제형의 제품들을 추가로 출시했다.


니베아 립 케어 제품은 ‘입술 보습’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인식되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소비자들이 애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소까지 촉촉(Make Me Smile)’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다.


6. 니베아의 광고 및 캠페인


1) 니베아의 초기 광고

니베아의 초기 광고에는 제품 자체의 장점(보습 기능, 유수분 균형 유지 등)을 집중적으로 광고하거나 니베아의 이름처럼 ‘눈처럼 하얀 백설공주’ 컨셉을 빌려와 여성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2) 광고 컨셉의 전환(1925년)

니베아는 1925년에 대대적인 제품 리뉴얼과 함께 광고의 방향을 바꿨다. 레저(Leisure), 스포츠(Sports), 그리고 야외활동(Nature Play)은 니베아 광고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고 과거처럼 하얗고 연약한 미(美) 대신, 태양에 그을린 건강미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1925년부터 니베아는 태양에 그을린 건강미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니베아는 가족적인 이미지를 광고 캠페인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온 가족을 위한 이상적인 선택’이라는 광고 문구는 니베아 크림이 이제는 여성용 화장품뿐만 아닌 남성과 아이들 모두를 위한 보습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니베아는 1925년에 순수하고 건강해 보이는 ‘니베아 소년들(The NIVEA Boys)’을 광고에 등장시켰고, 이후 ‘니베아 소녀들(The NIVEA Girls)’을 광고 캠페인에 합류시켰다.


3) 니베아 공(1950년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지속되면서 바캉스와 같은 야외 활동이 크게 늘었다. 니베아는 ‘니베아 공’을 광고용 소품으로 등장시켜 니베아가 야외활동에 적합한 제품이란 점을 강조했다. 니베아 공은 휴대가 쉬운 공기주입식 가족놀이용으로 제작되었다. 이 공은 1930년대에 이미 만들어졌지만 대중들에게 소개된 것은 1950년대였다. 니베아 제품 구입시 공은 사은품으로 증정되었는데, 휴대하기 편하고 단단하게 제작되어 해변에서 하는 공놀이에 사용되었다. 당시 전 세계 해변에서 니베아 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1971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천500만 개의 니베아 공이 생산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7. 니베아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 바이어스도르프 그룹(Beiersdorf AG)

바이어스도르프 AG(Beiersdorf AG)는 주문 소매업 및 커피 판매업을 하는 치보 그룹(Tchibo Group) 계열의 개인용 케어 제품 제조 및 판매 업체로, 본사는 독일 함부르크에 있다. 바이어스도르프 AG는 주식회사지만 회사 지분의 50% 이상은 치보 홀딩 AG(Tchibo Holding AG)가 보유하고 있는데, 치보 홀딩 AG는 바이어스도르프 AG의 실질적인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2) 관련 브랜드

바이어스도르프는 100년 전통의 니베아 브랜드 외에도 땀과 땀 냄새 제거 제품 브랜드인 ‘8x4’, 약국 전용 화장품 ‘유세린(Eucerin)’, 프레스티지 화장품 ‘라프레리(La Prairie)’, 상처치료 제품라인 ‘한자플라스트(Hansaplast)’, 립케어 제품인 ‘라벨로(Labello)’, 그리고 자연주의 화장품 ‘플로레나(Florena)’ 등 7개의 글로벌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3)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바이어스도르프는 전 세계에 150여 개의 지사와 2만 1천여 명의 직원들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어스도르프가 이들 브랜드에서 출시한 제품들은 지금까지 총 500여 종에 이른다.


4) 브랜드 가치

니베아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100)에 이름을 올렸다.


8. 니베아 브랜드 특징


1) 소비자의 삶을 진일보 시키는 제품 출시

바이어스도르프 약국에서 출발한 바이어스도르프는 파울 운나, 이삭 리프슈츠 등의 연구진을 기용해 신제품 개발에 주력했고 1900년대 초 세계 최초의 상처 치료 밴드 및 치약, 구강 세정제 등을 개발했다. 이 제품들은 소비자들의 위생 청결을 일상화시켜 삶의 질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11년 바이어스도르프는 세계 최초의 유화제인 유세릿을 개발해, 니베아를 포함한 기초 화장품의 토대를 마련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스킨 케어 제품은 물과 오일이 결합된 에멀션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녹지 않는 2가지 액체의 한편이 다른 쪽에 작은 입자 상태로 분산된 상태로, 상태가 불안정하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고 한다. 이를 연계해주는 제 3 성분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 세계 최초의 유화제, 바로 유세릿이었다. 오늘날 유화제는 계면활성수라고 불리며 대부분의 화장품에 사용되고 있다. 유세릿이 적용된 최초의 에멀젼인 니베아는 유화제의 다양한 활용가능성을 보여주며 화장품 업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브랜드 자산을 계승하는 일관성 있는 패키지

니베아는 제품 패키지 리뉴얼 시, 기존의 자산을 계승함으로써 제품의 일관성과 전통성을 소비자에게 전달했다. 오늘 날 우리에게 친숙한 ‘블루틴(Blue Tin)’은 1925년 이후에 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대 중반부터 현대적인 생활양식이 사회 전반에 등장하면서 1925년 니베아도 대대적인 패키지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다. 블루틴 디자인은 독일의 정치가인 티우도 호이스(Theodor Heuss)의 부인인 엘리 호이스 크냅(Elly Heuss-Knapp)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파란 바탕에 세리프체(Serif, 획 끝부분에 돌출선이 있는 글자체)가 아닌 모던한 서체의 흰색 로고가 적용되었다. 그녀는 이후 파란색과 흰색의 컬러 조합을 그대로 니베아 광고 캠페인에도 적용시켰다. 니베아는 8차례 리뉴얼을 통해 파란 바탕색의 농도와 로고 서체를 변경하긴 했지만 파란색과 흰색의 컬러 조합이라는 니베아 크림의 기본 요소는 100여년 동안 그대로 유지하며 니베아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 브랜드 정체성)로 만들었다.


3) 지역 맞춤형 제품 개발

바이어스도르프는 함부르크 본사에 아시아인 및 라틴 아메리카인을 위한 R&D센터를 설립해 각 나라의 기후에 적합한 제품들을 개발하고 있는데 니베아도 그 중 하나이다. 본사 R&D 센터는 유럽에서 가장 큰 피부 연구센터로 알려져 있다. 브라질, 인도, 중국 및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여러 국가에 약 50여 개의 R&D 센터와 850여 명의 연구인력들의 공동 연구를 통해 다양한 인종과 피부 타입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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