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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물info

올림푸스(Olympus) 브랜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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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림푸스의 정의 및 기원


올림푸스(Olympus)는 카메라, 내시경, 현미경, 의료 기기 등을 제조하는 일본의 광학 정밀 기계 브랜드이다. 전신인 다카치호 제작소(高千穂製作所)가 위치한 다카치호(高千穂)산은 일본에서는 80만 명의 신들이 살고 있다는 신화의 공간으로, 제품의 브랜드명이었던 올림푸스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살고 있다는 산의 이름에서 따왔다. 후에 올림푸스는 회사의 이름이 되었다. 창립자 야마시타 다케시(山下長)가 1919년 10월 12일 현미경과 온도계를 전문적으로 생산 판매하던 다카치호 제작소를 설립한 것이 올림푸스의 시작이었다. 이후 광학 장비가 회사의 주력 제품이 되자 1942년 다카치호 광학공업주식회사(高千穂 光学工業株式会社.)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1949년에는 올림푸스 광학공업주식회사(OLYMPUS Optical Co., Ltd.)로 다시 한 번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2003년, 회사명을 현재의 올림푸스 주식회사(OLYMPUS Corporation)으로 바꾸고 새롭게 출발했다. 설립시기부터 주력 분야였던 현미경 사업을 비롯하여 1936년에는 카메라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였고, 1950년에 세계 최초의 상용화된 위 카메라(내시경과 달리 위 안을 사진 촬영한 후 인화를 하여 위 내부를 진단하는 카메라)를 출시하며 이후 내시경 등 의료 기기 사업에 진출하였다. 2013년 기준 7,439억 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 올림푸스의 탄생 및 창업자


창업자 야마시타 다케시(山下長)는 1915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법률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다. 1년간 군복무를 한 뒤, 그는 토키와 상회(常盤商会)라는 무역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설탕 무역을 통해 토키와 상회에 상당한 이익을 안겨주었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토키와 상회는 야마시타 다케시가 그의 회사를 설립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출자해주었다. 야마시타 다케시는 변호사 시절 친구였던 테라다 신타로(寺田新太郎)와 함께 다카치호 제작소(高千穂製作所)라는 현미경과 온도계를 제작하는 주식회사를 1919년에 설립했다.


테라다 신타로는 1910년대에 일본 최초로 공업기술을 이용해 현미경을 제작한 인물로, 테라다 신타로의 현미경은 1914년 다이쇼 엑스포(大正博覧会)에 전시돼 동상을 수상했다. 테라다 신타로는 의료기기 전문 기업인 이와시야(いわしや) 사의 자금 지원을 받아 ‘M&KATERA’라는 이름의 현미경을 생산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내시경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야마시타 다케시는 당시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되었던 현미경을 제작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테라다에게 전하며 함께 일할 것을 권했고, 1919년 이들은 함께 다카치호 제작소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현미경을 시작으로, 이후 카메라와 내시경을 개발하면서 다카치호 제작소는 오늘날 올림푸스의 전신이 되었다. 그러나 올림푸스의 첫 번째 로고는 ‘올림푸스’가 아닌 ‘토키와(TOKIWA)’였다. 당시 설립자 야마시타 다케시가 근무했던 토키와 상회는 다카치호 제작소의 지분을 갖고 있었으며, 다카치호 제품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올림푸스의 역사


1) 다카치호 제작소 설립 ~ 기술력의 발전(1919~1935년)

현미경은 1590년경 네덜란드에서 발명돼,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에 돋보기를 활용한 현미경이 제조 판매되었다. 하지만 유럽의 현미경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성능은 되지 못하였기에 당시 세균학을 연구하는 일본의 학자들은 비싼 수입 제품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올림푸스의 창립자 야마시타 다케시는 동업자 테라다 신타로와 함께 현미경의 국산화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1919년 다카치호 제작소를 설립했고, 올림푸스 최초의 현미경 아사히(Asahi, 旭号)가 1920년 3월 발매되었다. 초기 모델 아사히의 당시 가격은 125엔으로 지금 기준으로 약 125만 엔이다. 당시의 현미경은 그만큼 공업적으로 매우 높은 가치가 있었다. 아사히는 사물을 600배율까지 관찰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설립자인 야마시타 다케시가 토키와 상회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올림푸스의 첫 현미경 모델 아사히는 토키와의 브랜드 이름으로 판매가 되었다. 1920년 첫해에 아사히 이외에 호마레(Homare), 후지(Fuji) 등 추가로 두 종의 현미경을 출시했다. 아사히와 호마레는 미동 기구를 갖춘 경통이동식현미경(현미경이나 망원경에서 접안렌즈와 대물렌즈를 연결하는 통을 경통(鏡筒)이라 하는데, 이 경통을 상하로 이동시키면서 초점을 맞추는 방식의 현미경)인 데 반해 후지는 조동 기구와 미동 기구를 함께 갖춰 초점을 맞추기 쉽다는 간편함이 있었다.


또 당시 일본에서는 양잠(養蠶)을 기반으로 한 섬유 산업이 중요한 산업 분야로 특히 미립자병과 같은 누에의 질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는데, 다카치호제작소는 이를 위한 용도의 현미경도 출시하였다. 1921년 2월에 ‘올림푸스’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였으며 제품의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다카치호 제작소는 이 로고를 현미경을 비롯한 다른 제품들, 브로슈어와 신문 등 광고에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카치호 제작소는 1923년에 현미경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체온계 사업을 매각하기도 했다.


다카치호 제작소는 1920년대에 유침(油浸) 기법을 활용한 1,000배율의 현미경을 개발했으나 독일제 현미경에 비해 성능이 떨어졌다. 그러나 성능이 좋은 독일제 현미경은 지나치게 고가여서 일반 연구원들이나 의사들이 구매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다카치호 제작소는 1927년에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성능을 가진 쇼와 GK(Showa GK)를 출시했다. 또 1928년에는 100배율의 유침용 대물렌즈를 장착한 종합 1,400배율의 현미경인 세이카 GE(Seika GE)를 개발해 ‘국산품 진흥 도쿄 박람회’에서 우수 국산품으로 선정되었다. 1932년 제 4회 발명박람회(発明博覧会)에 출품한 현미경이 대상을 차지하면서 외국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다카치호 제작소의 지속적인 노력은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 카메라 제조 사업에의 진출 ~ 올림푸스 광학공업주식회사의 탄생(1936~1949년)

다카치호 제작소는 현미경 제작에서 발전시킨 렌즈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를 위해 1934년부터 카메라 렌즈 개발을 시작했고, 1935년 미즈호 광학연구소(瑞穂光学研究所)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카메라 렌즈 개발에 나섰다. 1936년에는 자체 렌즈 개발에 성공하여 ‘서광’이라는 의미인 주이코(Zuiko, 瑞光)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다카치호 제작소는 처음에 렌즈만을 제작 판매하려 했으나 렌즈 부문의 판매만으로는 이익을 내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당시 일본 카메라 제조사인 프라우드(Proud)사에서 카메라 본체를 납품 받아 주이코 렌즈를 탑재한 첫 카메라 세미-올림푸스 I(Semi-Olympus I)을 출시했다. 이 카메라는 가로 4.5인치, 세로 6인치의 중형 폴딩 카메라로 당시 105엔의 가격으로 출시된 고급기종이었다.(당시 일본의 평범한 직장인의 초임은 75엔이었다.)


이후 다카치호 제작소는 자체적인 셔터 메커니즘과 카메라 본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1938년에는 자체 기술로 셔터와 본체까지 제작한 세미 올림푸스 II(Semi-Olympus II)의 개발에 성공했다. 1942년에 광학 관련 제품이 회사의 주력이 된 상황을 반영해 회사명을 다카치호 광학공업주식회사(高千穂 光学工業株式会社)로 바꾸었다. 1948년 다카치호 광학공업주식회사는 일본 최초의 35mm 카메라인 올림푸스 35 I(Olympus 35 I)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작고 가벼운 동시에 속사성(束射性)을 갖추고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1949년에 다카치호 광학공업주식회사는 올림푸스 광학공업주식회사(OLYMPUS Optical Co., Ltd.)로 이름을 변경하면서 브랜드명과 회사의 이름이 같아지게 되었다.


3) 의료 광학 기기의 제작 ~ PEN 출시 및 해외진출(1949~1968년)

1949년 당시에는 암을 조기 발견하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의사들이 이미 말기에 이른 위암환자의 위장을 절개했다가도 수술할 엄두를 내지 못해 다시 봉합을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올림푸스는 도쿄대학병원의 의사로부터 환자의 위 내부를 촬영하고 진단할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카메라는 초소형 렌즈, 위 안을 비출 초소형 조명, 유연성이 필요한 튜브 소재의 개발 등 제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올림푸스는 뱃속을 밝게 비추는 초소형 전구, 넓은 범위를 비추는 광각 렌즈 등을 활용한 끝에 첫 시제품이 완성했다. 하지만 촬영된 사진이 위장의 어느 부분인지 알 수가 없었고, 뱃속을 비추는 전구가 2~3번 밖에 빛나지 않아 진단에 시간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위장에서 20회 이상 빛을 낼 수 있는 전구를 개발해 이를 해결하였고, 1950년에 자발적으로 실험에 참가한 환자의 몸에 카메라를 삽입하는 세계 최초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전구는 환자의 뱃속에서 21번 밝게 빛났고, 카메라에는 위궤양 환부가 뚜렷이 찍혀 있어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위 카메라의 문제점은 사진이 찍힌 필름을 현상해서 보기 전까지 병상(病狀)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림푸스는 1964년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내시경인 파이버 스코프(Fiber Scope)를 개발했다. 내시경은 따로 사진을 촬영하지 않고도 의사가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한편 올림푸스는 1959년에 최초의 하프 사이즈 카메라인 올림푸스 PEN(OLYMPUS PEN) 카메라를 출시했다. 올림푸스 펜(Olympus PEN)의 제작은 ‘6,000엔에 팔리는 카메라를 만들자’는 목표에서 시작되었으며 펜처럼 휴대하기 좋을 정도로 작고 가볍다는 의미를 담아 PE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개발이 시작된 1958년 당시 라이카(Leica) IIIF의 카메라 가격은 19만 엔 수준이었으며, 올림푸스의 가장 싼 카메라 역시 2만 3천 엔 수준이었다.


사실 ‘6,000엔짜리 카메라’ 프로젝트는 현실화를 기대하고 시작되었다기보다는 당시 2년간 공장에서 실습을 막 마치고 디자인 부서로 돌아온 신입 카메라 개발자였던 마이타니 요시히사(米谷美久)에게 상사들이 던져 준 일종의 실험 과제 같은 것이었다. 그는 소형화와 경량화를 목표로 하여 저렴한 가격을 염두에 두면서도 렌즈에 대해서는 라이카의 고급 렌즈인 엘마(elmar)를 벤치마킹한 D-Zuiko 렌즈를 새롭게 개발, 장착해 묘사력을 살렸다. 이렇게 출시된 올림푸스 PEN은 뛰어난 묘사력을 내세우며 전문 사진 작가들의 서브 카메라, 그리고 종군 기자들이 애용하는 카메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카메라 제조사들은 통상 월 2~300개 정도를 제조 판매하는 수준이었으나, PEN은 출시와 동시에 월 5천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61년에 출시된 PEN EE는 고정 초점 카메라이면서 자동 노출계를 탑재하여 따로 초점을 맞추거나 조리개 설정을 할 필요 없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여성 사용자들까지 고객층으로 끌어들이며 PEN 시리즈의 대중화를 이끌어내었다. 1963년에 출시된 PEN F는 세계 최초의 일안반사식(SLR,Single Reflex Lense) 하프 사이즈 카메라로 기존 카메라에 비해 훨씬 가볍고 작아 누구나 사용하기에 좋았다.


올림푸스는 1964년 독일 함부르크(Hamburg)에, 또 1968년에는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해외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4) 의료 분석기 사업 진출 ~ OM 시리즈의 등장(1969년~1995년)

한편, 병리학의 발달과 함께 그 검사 방법과 시약 등에서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를 분석하는 것은 사람이 하다 보니 인력의 부족이나 개인 기량에 따른 데이터 분석의 차이 등은 여전히 실제적인 문제로 남아 있었다. 일본 내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화학 자동 분석기에 대한 임상의들의 요구가 늘어나고 있었으며, 올림푸스는 병리학적 분석을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생화학 분석기의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1969년에 올림푸스가 처음 개발한 ACA-III는 최초로 검사의 전 과정을 자동화했다는 점에서 일본 의료진들의 주목을 받으며 1971년에 최초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ACA-III는 한 환자당 4개 항목에 걸쳐 1시간에 60명 분에 대해서만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일본 적십자사의 요청을 받아 1974년에 발매를 시작한 ACA-201은 이런 문제점들을 많이 보완했다. 올림푸스는 ACA-201에 각각의 분석 과정을 모듈화하여 연결시키고 검사할 시료들을 그 모듈 사이로 이동하게 하는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이후 시료들을 고속으로 대량 처리할 수 있는 자동 분석기의 기초를 닦게 되었다.


한편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일본은 불황기를 거치며 카메라 시장에도 정체가 왔다. 올림푸스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그들의 인기 상품인 1970년대 펜 시리즈를 미국 시장에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필름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코닥(Kodak)은 펜 시리즈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다. 표준 필름의 반만을 사용하는 펜 시리즈에 쓰일 필름 마운트(필름을 슬라이드 형태로 만들 때 필름의 주위를 둘러싸는 프레임)의 비용이 기존의 2배가 된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올림푸스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 35mm 일안반사식 카메라의 제작에 힘쓰게 되었다.


당시의 일안반사식 카메라들은 크고, 무겁고, 셔터를 누를 때 소리와 충격이 크다는 세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무거운 제품이 1.4kg 정도의 무게였는데, 올림푸스는 그 절반 정도의 무게인 700g을 목표로 개발에 들어갔다 또한 높이와 두께를 각각 20% 정도 줄여서 부피 또한 절반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나온 제품이 바로 1973년에 출시된 올림푸스 OM-1(Olympus OM 1)이었다. OM-1은 당시 출시된 일안반사식 카메라 중 최소형, 최경량 바디였을 뿐 아니라 셔터를 누를 때의 충격과 소리 또한 줄였다. 이후 1975년에는 자동 노출 시스템을 장착한 OM-2, 1978년에는 최대 8점의 멀티 스팟 측광 기능(카메라 프레임 내의 한곳이 아닌 여러 곳을 측광함으로써 평균값의 노출도를 유지해주는 기능)을 가진 OM-4를 출시했다.


1979년에 올림푸스는 휴대성을 극대화한 카메라인 XA시리즈를 출시했다. XA 시리즈는 기존의 일안반사식 형태를 버리고, 주머니에 넣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거리계연동카메라였다. 올림푸스는 XA 시리즈에 캡슐형 케이스에 슬라이딩 형태의 렌즈 커버를 적용하여 보호 케이스 없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토포커스 카메라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올림푸스 또한 AF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이에 대응하였다. 특히 1986년에 나온 AF-1은 생활 방수기능을 최초로 적용한 컴팩트 카메라였다. 1991년에는 디자인을 한층 강화한 뮤(μ[mju:]) 시리즈를 발매하였는데 이 시리즈의 첫 모델은 단일 기종으로만 50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5) 디지털 카메라로의 전환 ~ 사사 히로유키 대표 이사 체제(1996~현재)

디지털 카메라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올림푸스 또한 1996년부터 디지털 카메라 라인인 카메디아(Camedia) 시리즈를 출시했다. 첫 디지털 카메라였던 카메디아 C-800L은 당시까지만 해도 ‘1만 화소당 1만 엔’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고가로 책정되어 있던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81만 화소에 12만 8천 엔의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97년에는 광학 3배 줌 렌즈를 탑재한 고정식 디지털 카메라 카메디아 C-1400L이 141만 화소에 12만 8천 엔의 가격으로 발매되며 다시 한 번 큰 인기를 끌었다.


2003년에는 회사의 이름을 올림푸스 주식회사(OLYMPUS Corporation)로 바꾸었다. 같은 해에 인기 시리즈였던 뮤 시리즈의 디지털 카메라 버전인 뮤-10 디지털(μ-10 DIGITAL)을 320만 화소에 생활 방수 기능을 탑재하여 출시하였고, 동시에 올림푸스 최초의 렌즈 교환식 DSLR(Digital Single-Lens Reflex) 카메라 E-1을 출시했다.


특히 올림푸스는 E-1에서부터 디지털을 고려하여 렌즈 마운트와 전체 시스템을 디자인한 포서즈 시스템(Four-Thirds System)을 적용하여 컴팩트하면서도 고성능의 디지털 카메라 라인을 출시했다. 합리적인 가격 대비 성능으로 좋은 퀄리티의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진가들에게 올림푸스 E 시리즈는 큰 인기를 얻었다.


올림푸스의 포서즈 시스템은 2008년 파나소닉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최초의 미러리스 카메라(Mirrorless Camera) 표준인 마이크로 포서즈 시스템(Micro Four Thirds System)으로 이어졌다. 2009년 선보인 올림푸스 PEN E-P1은 과거 PEN 시리즈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기존 DSLR 카메라와 비교하여 크기를 58%까지 줄이면서도 1,230만 화소의 고화질을 구현했다. 이 제품은 2008년에 파나소닉의 루믹스 DMC-G1과 함께 미러리스 카메라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며 이후 다른 브랜드들도 합세한 미러리스 카메라 열풍을 이끌었다. 2012년에는 OM 시리즈를 디지털 카메라로 새롭게 구현한 올림푸스 OM-D가 출시되었다. 이 제품은 클래식한 디자인에 전자식 뷰파인더(Viewfinder)를 비롯하여 세계 최초의 5축 손떨림 보정 기능 등을 적용하여 프로급 유저들을 겨냥한 최고급 기종이었다.


2011년 말 올림푸스는 분식회계로 인한 스캔들에 휘말렸다. 올림푸스는 1990년대 고위험성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일본의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17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는데, 2001년 회계처리 방식이 바뀌면서 이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당시 기쿠카와 쓰요시(菊川剛) 회장 등 올림푸스 경영진은 기업의 인수 · 합병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손해를 메우고, 유가증권 투자에서 발생한 손해를 장부에 기록하지 않는 등 회계부정을 저질렀다.


그러나 분식회계는 2011년 올림푸스 최초의 외국인 CEO로 취임한 마이클 우드퍼드(Michael Woodford)의 폭로로 언론에 드러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올림푸스의 주가는 폭락하여 시가 총액 5,500억 엔이 날아가며 사태 이전의 1/5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올림푸스는 상장폐지 위험에까지 처하였으나, 결국 상장은 유지하되 도쿄증권거래소로부터 특설주의시장종목(특설주의시장종목에 지명된 기업은 1년마다 내부관리체제 상황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3년 후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상장이 폐지된다.)으로 지정되는 선에서 그쳤다.


이후 1982년 27세 나이에 올림푸스에 입사한 이후 2001년 올림푸스 내시경 사업기획부장, 2005년 올림푸스 메디컬 시스템즈 마케팅 본부장 등을 거치며 평생을 올림푸스에서 근무해온 사사 히로유키(笹宏行)가 2012년 4월 대표 이사 겸 최고경영자로 부임했다. 사사 히로유키는 부정을 저지른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고 임원 선임 절차 투명화, 경영집행의 감독통제 강화, 새로운 내부관리체제 구축 등을 통해 회사 문화를 쇄신했다. 특히 전임자였던 기쿠카와 쓰요시의 재임 기간 동안 무리한 확장을 때문에 71개에서 199개까지 무분별하게 늘어난 자회사를 비롯하여 수익이 나지 않는 정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사업들을 정리하고, 기존의 의료기기 사업에 집중하면서 회사의 내실을 다졌다. 2013년 6월 올림푸스는 상장 재심사에 통과하여, 특설주의시장종목에서 해제되었다.


4. 올림푸스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1) 하프 사이즈 카메라(Half Frame Camera)

1959년 올림푸스가 출시한 PEN은 최초의 하프 사이즈 카메라였다. 올림푸스의 하프 사이즈 카메라는 기존 35mm 필름(24*36mm)의 절반인 17*24mm(JIS)의 포맷으로 촬영함으로써 필름을 절반만 사용하였다. 즉 사진 한 컷당 필름을 사용하는 면적이 절반이었기 때문에 36매 필름으로 72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뷰파인더 또한 일반 카메라와 달리 세로가 더 긴 형태였다. PEN은 일반 35mm 카메라와 세로 높이는 동일했으나, 절반 수준의 가로폭으로 작고 가벼워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2) 생활 방수 카메라

1986년 올림푸스는 세계 최초로 생활 방수 기능을 갖춘 전자동 콤팩트 카메라 AF-1을 출시했다. 카메라의 경우 시계와 달리 렌즈 테두리 주변, 필름과 배터리 교환부, 조작부 등 방수 처리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생활 방수 제품을 만드는 것은 당시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올림푸스는 고무 패킹과 플라스틱 부품으로 생활 방수를 실현했다. 이렇게 축적된 다양한 방수 기술은 이후 뮤(μ) 시리즈로 계승돼 메탈 바디 디지털 카메라에서도 방수가 가능해졌다. 또한 올림푸스는 2013년 수심 15m에서도 촬영이 가능한 STYLUS TG-2를 출시하는 등 생활 방수 카메라들을 꾸준히 발전시켰다.


5. 올림푸스의 대표 상품 라인


1) 올림푸스 PEN F

올림푸스는 1959년 세계 최초의 하프 사이즈 카메라인 올림푸스 PEN을 출시했고, 뒤이어 고정 초점을 통해 사용의 용이성을 부각시킨 올림푸스 PEN EE(1961년) 등을 연이어 출시했다. 하지만 PEN 시리즈 중 가장 특이한 제품은 바로 1963년에 나온 올림푸스 PEN F로, 이 제품은 세계 최초이자 세계 유일의 하프 프레임 일안반사식 카메라이다.


PEN F는 렌즈틑 통해 들어온 빛을 거울로 반사해 후면의 파인더로 확인하는 시스템은 기존 일안반사식 카메라와 동일하지만 내부의 거울 방향이 전혀 달랐다. 작은 크기를 유지하면서 SLR 구조를 완성하기 위해 올림푸스는 PEN F에 거울을 측면 방향으로 개폐되도록 비틀어 포로-프리즘(porro-prism) 파인더를 적용했다. 이 때문에 PEN F는 일안반사식 카메라의 상징인 펜타프리즘을 없애 윗부분이 평평한 모양이다.


올림푸스 PEN F는 1966년에 TTL 노출계(Through the Lens, 렌즈를 통해 입사한 반사광을 재는 노출계)를 내장한 올림푸스 PEN FT로 이어졌다. 이후 PEN시리즈는 총 1천 7백만 대의 판매량을 올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 올림푸스 OM 1(1973)

올림푸스 OM 시리즈는 당시 SLR 카메라가 갖고 있던 ‘크다’, ‘무겁다’, ‘셔터 소리와 충격이 크다’라는 큰 3가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카메라로, 1973년 올림푸스 OM-1이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가장 무거웠던 일안반사식 카메라는 니콘 제품으로 1.4kg이었으며, 올림푸스 OM은 그 절반인 700g의 무게를 목표로 기획되었다. 또 높이와 두께에서도 20% 작은 사이즈를 목표로 디자인에 들어갔다. 당시 카메라들은 부피가 크더라도 내부에 여유 공간이 많은 편이었으며, 기계식 구조였기 때문에 모든 공간을 조밀하게 디자인하기 힘들어 어떤 부분에는 부품들이 많이 들어가고 어떤 부분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올림푸스의 카메라 설계자인 마이타니 요시히사는 이런 부분에 주목했고, 보통 기계식 카메라들이 셔터 버튼 주변에 셔터 속도를 조절하는 다이얼을 두는 것에 반해 셔터 다이얼을 렌즈 마운트에 두는 등 설계 단계에서 획기적인 구조를 선보였다. 또 비록 작은 나사라도 놋쇠가 아닌 경량화한 철이나 합금을 사용해 중량을 절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1973년에 선보인 OM-1은 세계 최소 초경량 35mm 일안반사식 카메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올림푸스는 OM-1을 통해 천으로 된 셔터막 안의 리본을 끈으로 대체했고, 에어 댐퍼(Air Damper, 완충기)를 장착하여 셔터 소음과 충격을 줄였다. 또 집광 콘덴서를 생략하고 아래 부분이 곡면으로 이루어진 펜타프리즘을 적용해 바디를 작게 만들었다. 셔터는 10만 번 작동할 수 있도록 내구성을 강화했다. OM-1 생산을 계기로 경량화를 위한 철 소재 부식 방지 기술, 펜타프리즘 가공 기술,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한 열처리 및 표면 처리 기술 등 다양한 카메라 제작 기초 기술들이 크게 발전했다.


3) 올림푸스 PEN E-P1

2009년에 선보인 올림푸스 PEN E-P1은 과거 PEN 시리즈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미러리스 카메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올림푸스는 반사 거울과 프리즘을 없앤 자체적인 마이크로 포서드(Micro Four-Thirds) 시스템을 활용하여 당시 기존의 최소형 DSLR 카메라와 비교하여 크기를 58%까지 줄이면서도 1,230만 화소의 고화질을 선보였다.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은 렌즈의 플랙지백(Flange Back, 마운트와 촬상면 사이의 거리)이 짧아서 렌즈의 크기와 부피를 줄일 수 있고, 또 동시에 어댑터를 활용할 경우 다양한 렌즈들을 호환해서 사용할 수 있어 확장성에서도 장점을 보였다. 이후 올림푸스가 미러리스 카메라의 선두 주자로 자리잡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6. 올림푸스의 홍보 및 캠페인


1) ‘지구 온난화의 목격자’ 캠페인

2006년부터 올림푸스는 야생사진 전문작가인 미츠아키 이와고(岩合光昭)와 함께 지구 환경과 자연 보호를 주제로 한 ‘지구 온난화의 목격자(GWW,Global Warming Witness)’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츠아키 이와고는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에 일본인 최초로 사진을 2번이나 게재하고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진상인 ‘키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사진 작가다.


2006년 캐나다 허드슨 베이(Hudson Bay)의 북극곰, 2007년 케냐 암보셀리(Amboseli) 국립공원의 코끼리, 2008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시레토코(知床) 반도의 참수리, 에조 시카 사슴 등 지구 온난화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는 동물들을 사진에 담았다. 올림푸스는 그의 사진 작품들과 함께 잡지 광고를 진행하여 2009년에는 ‘제 14회 내셔널 지오그래픽 일본판’에서 광고상을 수상했고, 2회에 걸쳐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한 포토 콘테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2) 스타를 통한 현지화 마케팅

올림푸스는 원빈, 김태희, 보아, 전지현, 이병헌, 하정우 등 국내 대표 스타를 기용한 CF를 한국에서 선보이며 철저한 현지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함과 동시에 젊고 세련되며 친근한 이미지를 전달했다. 2014년 올림푸스는 하정우를 모델로 기용하여 ‘본질을 잊은 세상으로부터 카메라를 구하라’ 캠페인을 실시했다. 이 CF에서는 ‘셀카나 찍는 카메라가 되지 마라’, ‘인증샷 카메라로 남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사진이 필름이 아닌 디지털 방식으로 바뀐 이후의 변화를 집어냈고, 올림푸스는 가치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카메라의 기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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