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찌의 정의 및 기원
구찌(Gucci)는 구찌오 구찌(Guccio Cucci)가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에 설립한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이다. 구찌오 구찌는 1921년 피렌체에 자신의 성을 딴 ‘구찌’라는 가죽제품 전문점을 열어 이후 세 아들과 함께 1940년대 무렵 밀라노, 로마 등 이탈리아 패션 중심지를 비롯해, 1950년대부터 런던, 뉴욕, 파리 등 전세계로 매장을 확대하였다. 현재 핸드백, 여행 가방, 신발, 실크, 시계, 파인 주얼리 등을 선보이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아이웨어는 사필로(Safilo), 향수는 P&G와 라이선스 형식으로 생산·유통하고 있으며 구찌의 제품은 직영 스토어(2013년 9월 기준 461개)와 백화점 및 전문 스토어를 통해서만 판매하고 있다.
2. 구찌의 탄생 및 설립자
구찌의 창립자 구찌오 구찌는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업으로 밀짚모자를 만드는 집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구찌오 구찌는 밀짚모자 제조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판단하고 1897년 당시 전 세계의 부호들이 모이는 런던의 사보이 호텔(Savoy Hotel)로 갔다. 구찌오 구찌는 이 곳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귀족과 상류층의 기호 및 문화를 익혔다. 부유한 호텔 손님들의 최고급 러기지(Luggage)에 깊은 인상을 받은 구찌오 구찌는 1902년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가 프란지(Franzi)라는 이름의 가죽 제조업체에서 가죽 공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1921년 구찌오 구찌는 피렌체에 있는 비냐 누오바 거리(Via Vigna Nuova)에 ‘구찌’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열었고 연이어 같은 해 빠리오네 거리(Via Del Parione)에 두 번째 매장을 내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 구찌는 설립자인 구찌오 구찌가 사보이 호텔에서 근무하며 접했던 영국 귀족의 스타일에, 섬세한 가죽 가공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장인 기술을 결합하여 장갑 및 부츠와 같은 승마 용품을 중심으로 한 가죽 제품을 주로 선보였다. 이것이 ‘구찌’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3. 구찌의 역사
1) 작업장, 제품군, 매장의 확장 ~ 뱀부 백(Bamboo Bag)의 탄생(1935~1950)
구찌오 구찌가 생산한 승마 용품은 승마를 스포츠로 즐기는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마차의 활용도는 과거보다 줄어들어 다양한 제품 라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37년 구찌오 구찌는 작업장을 확장하여 핸드백, 트렁크, 장갑, 신발, 벨트 등 생산 제품을 좀 더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구찌의 가죽 제품은 승마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 많았다. 특히, 승마용품인 호스빗(Horsebit, 말 재갈. 말을 부리기 위해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 보통 쇠로 만들며 굴레가 달려 있어 여기에 고삐를 맨다)과 등자를 활용하여 가죽용품에 장식하는 것은 구찌의 고유한 상징이 되었다.
1940년대 구찌오 구찌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말기의 위기 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했다. 모든 물자가 전쟁에 동원되고 국제연맹이 이탈리아로 수출 금지령을 내려 금속, 가죽 등의 소재가 부족했던 시기, 아버지 구찌오 구찌의 사업을 돕고 있었던 첫째 아들 알도 구찌(Aldo Gucci)는 대마, 삼마, 황마, 대나무 등의 대체품을 소재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알도 구찌는 이탈리아 나폴리(Napoli)산 대마와 삼마를 이용하여 작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서로 연결되는 형태로 직조하고 이를 여행 가방에 사용했다. 이로써 탄생한 구찌의 디아만테(Diamante) 캔버스는 구찌의 첫 시그너처(Signature, 상징적인) 프린트가 되었다.
동시에 구찌는 매장 확장에 힘을 쏟았다. 구찌는 1938년 당시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이자 전 세계 부호들이 자주 찾는 쇼핑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로마 콘도티 거리(Via Del Condotti)에 새로운 구찌 매장을 열었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패전국인 이탈리아의 물자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수많은 이탈리아의 가죽 업체가 도산했다. 알도 구찌는 일반적인 가죽 대신 돼지피혁(Pigskin, 스웨이드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을 활용하는 대안을 찾았다. 유일하게 수입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이처럼 전쟁 후의 위기는 오히려 구찌의 뱀부 백(Bamboo Bag)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2) 가족 경영의 시작 ~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1951~1981)
구찌오 구찌는 구찌를 직접 경영하는 한편 세 아들 알도 구찌, 바스코 구찌(Vasco Gucci), 로돌프 구찌(Rodolfo Gucci)를 회사의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시켰다. 1951년 로돌프 구찌는 밀라노(Milano) 몬테나폴레오네 거리(Via Montenapoleone) 5번지에 구찌 매장을 열었고, 2년 후인 1953년 알도 구찌는 뉴욕 58번가 사보이플라자 호텔(Savoy Plaza Hotel)에 구찌 매장을 열었다. 이로써 구찌는 뉴욕에 진출한 최초의 이탈리아 브랜드가 되었다.
1953년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가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첫째 아들인 알도 구찌와 셋째 아들인 로돌프 구찌가 각각 50%씩 경영권을 나눴다. 알도 구찌는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발산하며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알도 구찌는 1961년 창립자이자 아버지인 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딴 GG 로고를 만들고 이를 캔버스 소재로 만들어 가방, 액세서리, 옷에 사용했으며 같은 해 재키 백(Jackie Bag)을 만들었다. 또한 알도 구찌는 1961년 팜비치, 1968년 비버리 힐즈를 비롯하여 1972년 도쿄와 1974년 홍콩에 구찌 매장을 내며 구찌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구찌는 1975년 향수를, 1979년에는 액세서리 컬렉션을 론칭하였고, 일정 비용을 받고 이름을 빌려주는 라이선스 사업도 시작했다. 1977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미국 비버리 힐즈(Beverly Hills)의 구찌 매장에는 리타 헤이워드(Rita Hayworth),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 등 톱스타들이 찾아와 금과 다이아몬드 체인을 장식한 1만 달러 상당의 백과 여우털로 만든 호사스러운 침구를 구입하여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구찌의 명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1981년 구찌는 피렌체에서 첫 기성복(Ready to Wear) 패션쇼를 열었고 구찌의 상징 중 하나인 플로라(Flora) 프린트로 만든 옷이 대거 선보였다.
3) 가족 경영의 위기 ~ 전문 경영인 체제로 변화(1982~1993)
1982년, 구찌는 가족 경영진의 결정을 통해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까지 전 과정을 맡아 경영하는 S.P.A로 전환하고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1년 뒤, 로돌프 구찌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마우리초 구찌(Maurizio Gucci)가 경영권을 승계했다. 이에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울로 구찌(Paolo Gucci)는 크게 반발하며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으로 핸드백, 액세서리, 와인 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는 구찌 이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이탈리아 전통의 가족 경영에 위기를 불러왔고 그 사이 구찌의 재정난도 심화되었다.
마우리초 구찌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89년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 (Bergdorf Goodman)의 뉴욕 지사장 돈 멜로(Dawn Mello)를 구찌의 디자인 총괄이사로 영입했다. 돈 멜로는 구찌에 새로운 디자인 팀을 꾸렸다. 훗날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가 된 당시 29세의 디자이너 톰 포드(Tom Ford)도 이때 구찌 디자인 팀에 합류했다. 마우리초 구찌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의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던 도메니코 데 솔레(Domenico De Sole)를 구찌 아메리카의 사장 겸 관리이사로 영입했다. 이로써 구찌에 전문 경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 도메니코 데 솔레는 유통을 직접 통제하는 동시에 그동안 남발했던 구찌 브랜드의 라이선스 사업을 정리하고 프랜차이즈도 환수했다.
4)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영입 ~ 현재(1994~2014)
바레인에 본사를 둔 투자 회사 인베스트코프(Investcorp)는 1987년부터 구찌의 지분을 인수했다. 1989년 인베스트코프는 구찌 주식의 50%를 매입했고 1993년 마우리초 구찌가 자신이 보유한 50%의 주식 지분을 매각하면서 인베스트코프가 회사의 전체 지분을 소유하게 되었다. 구찌 내부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다. 1995년 돈 멜로는 구찌를 떠나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의 회장으로 돌아갔고, 도메니코 데 솔레는 CEO(최고 업무 책임자)가 되었다.
1994년 톰 포드는 컬렉션은 물론 선글라스, 향수, 광고, 매장 등 구찌의 모든 외양을 책임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톰 포드가 1995년에 선보인 구찌의 젯셋 글래머(Jet-Set Glamour) 테마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로고, 호스빗 등 구찌의 옛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통과 새로움을 동시에 부각했다. 무엇보다 톰 포드가 매장과 광고 이미지까지 일괄적으로 감독하면서 새로워진 구찌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구찌의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1998년 유럽 언론협회는 구찌를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했다. 톰 포드 이후 패션계에서는 단순히 옷을 디자인하는 수석 디자이너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매장 구성과 광고까지 진두지휘하며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포지션이 유행하기도 했다. 2000년, 구찌는 구찌 그룹(Gucci Group)으로 이름을 바꾸고 당시 피노 프랭탕 레두트(Pinault Printemps Redoute)였던 PPR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구찌를 중심으로 한 럭셔리 포트폴리오 구축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구찌의 변화를 주도했던 톰 포드와 도메니코 데 솔레가 재계약에 대한 PPR 그룹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구찌를 떠났다. 이에 남성복 디자인의 존 레이(John Ray), 여성복 디자인의 알렉산드라 파치네티(Alessandra Facchinetti), 액세서리 라인의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로 구성된 3인 디자이너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리다 지아니니는 전 펜디(Fendi)의 핸드백 디자이너였고 2002년 구찌 그룹에 합류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맡은 액세서리 라인이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 2006년 그녀는 구찌 전체를 단독으로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브랜드를 맡은 후 4년간 구찌의 매출은 46% 신장했고, 구찌는 2007년 시장조사전문회사인 닐슨(Nielsen)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9년,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Patrizio di Marco)가 마크 리(Mark Lee, 2005~2009년 구찌 CEO)를 대신하여 CEO로서 구찌에 합류했다. 같은 해, 구찌는 디자인 사무실을 로마의 빨라조 알베리니(Palazzo Alberini)로 옮겼다.
4. 구찌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1) 더 웹(THE WEB)
세 가지 컬러가 조화된 구찌의 더 웹은 1951년 말 등에 안장을 고정시킬 때 사용하는 캔버스 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그린-레드-그린’ 컬러 조합이 기본으로 흔히 ‘GRG’라고도 불리며, 이를 응용한 ‘블루-레드-블루’ 컬러 조합은 ‘BRB’라고 불린다. GRG 더 웹은 오랜 세월에 거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는데 1950년대에는 여행가방, 1961년에는 재키 백, 1970년대에는 A라인 스커트에 자주 사용되었고 프린트나 가죽 패츠워크로도 변형되었다. 1961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GG 로고와 더불어 구찌의 제품임을 한눈에 각인시키는 구찌의 홀마크(Hallmark, 품질보증마크)로 사용됨과 동시에 특유의 스포티한 분위기로 구찌의 젊고 세련된 감각을 상징하는 아이콘(Icon, 상징)이 되었다.
2) 플로라(Flora)
창립자 구찌오 구찌의 아들인 로돌프 구찌는 1966년 모나코의 왕자비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를 위해 플로라 패턴을 만들었다. 당시 그레이스 켈리는 남편인 모나코 레니에(Rainier III) 왕자와 함께 밀라노 구찌 매장을 방문하여 그린 컬러의 뱀부 핸드백을 구입했다. 로돌프 구찌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선물하고 싶으니 제품을 하나 더 고르라고 권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스카프를 원했는데 당시 구찌에는 스카프가 없었다.
로돌프 구찌는 특별한 손님에게 단 하나의 스카프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즉시 일러스트레이터 비토리오 아코르네로(Vittorio Accornero)에게 스카프를 디자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 날 비토리오 아코르네로는 사계절을 대표하는 꽃과 열매, 곤충이 어우러진 일러스트를 가지고 왔고 이렇게 구찌 플로라가 탄생되었다.
5. 구찌의 대표 상품 라인
1) 뱀부 백(Bamboo Bag)
구찌는 1947년에 ‘0633’이라는 모델 번호로 뱀부 백을 선보였다. 이때 선보인 첫 뱀부 백은 부드러운 돼지피혁 소재로 몸통을 만들고 일본산 대나무 손잡이를 부착한 작은 사이즈의 핸드백이었다. 13시간 가량 대나무에 열을 가해 둥근 형태로 구부린 것은 말 안장의 곡선적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승마 용품에서 영감을 받은 초창기 구찌 제품의 디자인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뱀부 백은 4개의 금속 고리를 사용해 둥근 대나무 손잡이를 가방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돼지피혁과 대나무 손잡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 된 이탈리아의 열악한 상황에서 구찌가 내놓은 대안이었고 자연 소재를 최대한 부각해 디자인에 적용한 아이디어는 훗날 패션사에서 중요한 혁신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점차 뱀부는 구찌의 상징이 되어 우산 손잡이, 시계, 벨트, 구두, 스카프의 패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찌 제품에 활용되었다. 톰 포드가 구찌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재해석한 것도 뱀부 백이었다. 2010년에는 프리다 지아니니가 뱀부 백을 재해석하여 ‘뉴 뱀부 백 (New Bamboo bag)’을 출시했다.
2) 호스빗 로퍼(Horsebit Loafer)
호스빗 로퍼는 1953년 승마용 재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구찌를 대표하는 신발이다. 1959년, 칸의 호텔 테라스에서 알랭 들롱(Alain Delon)이 호스빗 로퍼를 신고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와 함께 앉아 있는 흑백사진은 호스빗 로퍼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호스빗 로퍼는 금속 장식을 신발의 발등에 장식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인정받아 1985년부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Metropolitan Museum)에 ‘디자인과 크래프트맨십의 패셔너블한 시도’라는 타이틀로 영구 전시되어 있다. 구찌는 2013년 호스빗 로퍼의 탄생 60주년을 맞아 익스클루시브 1953 컬렉션(Exclusive 1953 Collection)을 선보이기도 했다.
3) 재키 백(Jackie Bag)
1950년대 구찌가 출시한 둥근 모서리의 숄더 백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 리타 헤이워드(Rita Hayworth), 브릿 에클랜드(Britt Ekland) 등 당대의 여배우뿐만 아니라 소설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등 남성도 즐겨 메곤 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착용자는 재클린 오나시스(Jacqueline Onassis)였다. 재클린 오나시스는 1960년대 전반에 걸쳐 공식석상과 개인적인 모임에 이 백을 자주 들었고, 이는 이 백이 재키 백이라고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GG 캔버스 천에 GRG 더 웹 스트랩이 조화된 재키 백은 여전히 구찌의 베스트셀러(Best Seller)이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는 2009년 재키 백을 ‘뉴 재키 백 (New Jackie Bag)’이라는 이름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둥근 모서리는 오리지널 재키 백을 그대로 닮았고 바이올렛, 에머랄드 등 다양한 컬러와 악어가죽, 타조가죽, 송아지 가죽 등 다양한 소재를 적용하였으며 뱀부와 긴 가죽 테슬(Tassel, 술) 장식을 더해 좀 더 활기차고 강인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6. 구찌의 광고 및 캠페인
1) 초기 광고
구찌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첫 매장을 내고 다음 해인 1922년, 4월 8일에 구찌는 지면 광고를 통해 상류층의 최첨단 패션과 이탈리아 장인의 솜씨를 결합한 가죽 제품 전문점의 탄생을 알렸다. 부호들이 모이는 곳에 매장을 내는 것은 당시 구찌의 중요한 마케팅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구찌 로마 매장을 방문하거나 공항에서 구찌 가방을 들고 여행을 가는 유명인들의 모습이 매스컴을 통해 자주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구찌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는 높아졌다. 특히 1950년대 로마 콘도티 거리의 구찌 매장을 방문한 그레이스 켈리와 그녀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의 사진은 구찌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콘도티 거리의 구찌 매장은 이탈리아 로마에 오면 꼭 가보아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 당시 구찌의 지면 광고 또한 이탈리아의 거리를 배경으로 찍은 제품 사진에 로마, 피렌체와 같이 구찌 매장이 있는 이탈리아의 지역명을 표기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매장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는 동안 구찌는 경제 호황으로 새롭게 생겨난 신 중산층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신 중산층은 여행을 자주 다녔고, 구찌는 가장 좋은 품질의 여행 가방을 살 수 있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행 가방으로 시작한 구찌의 DNA를 강조하기 위해 양손에 여행가방을 든 기사의 모습을 한 구찌의 크래스트(Crest) 로고를 선보이기도 했다.
2) 최근 광고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에게 광고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는 동성애, 삼각관계 등을 암시하는 광고를 통해 전통의 브랜드 구찌를 세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다. 톰 포드는 패션과 성적 코드를 결합시킨 이른바 ‘포르노 시크(Porno Chic)’의 창시자였고 세계적인 사진가 마리오 테스티노(Mario Testino), 프랑스 출신의 스타일리스트 카린 로이펠드(Carine Roitfeld)와 작업함으로써 관능적인 비주얼을 고급스럽게 풀어내었다. 스타일리스트이자 에디터인 카린 로이펠드는 “패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톰 포드 이전과 톰 포드 이후로 나뉜다. 그는 마케팅의 힘을 진정으로 이해한 최초의 디자이너이다.”라며 톰 포드를 인정하기도 했다.
구찌가 처음으로 TV를 통해 선보인 캠페인은 2007년, 프리다 지아니니가 만든 구찌의 첫 향수 구찌 바이 구찌 뿌르 옴므(Gucci By Gucci Pour Homme) 광고였다.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감독하고 영화배우인 제임스 프랭코(James Franco)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2011년 창립 90주년을 맞은 구찌는 광고에 1950년대 구찌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인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등장시킴으로써 구찌의 전통을 다시 강조했다.
3) 환경과 이웃을 배려하는 캠페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프리다 지아니니로 바뀐 이후 구찌는 환경과 이웃을 배려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2010년 6월부터 구찌는 전 세계 구찌 직영매장에서 ‘에코 프렌들리 프로젝트’(Eco Friendly Project)를 시행하여, 쇼핑백과 박스 포장을 줄이고 100% 재활용이 가능한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산림관리협회) 인증 용지를 사용하며 겉면을 반짝이게 하는 플라스틱 코팅 사용은 일절 제한했다. 리본과 가먼트 백(Garment Bag, 슈트, 백, 슈즈 등을 구입할 때 브랜드에서 함께 제공하는 천으로 된 덮개) 역시 폴리에스테르 소재에서 코튼 소재로 변경했다.
이 밖에도 구찌는 업무 시간 이후 소등, 빛 감지기의 설치 등 매장에서 시행할 수 있는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35톤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 감소, 1400톤의 종이 소비 감소, 10,000톤의 Co2 배출 감소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구찌의 CEO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는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오늘날 단지 제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커뮤니티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또 환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대해 평가받고 있다’며 구찌는 기업의 사회 책임(SA 8000)을 위한 인증 절차를 2004년부터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경영 윤리, 인권에 대한 존중, 환경, 근로자들의 건강, 안전, 권리 등을 공언하고 있다고 밝혔다.
100% 재활용이 가능한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산림관리협회) 인증 용지를 사용하며 포장 겉면을 반짝이게 하는 플라스틱 코팅 사용은 일절 제한했다.
한편 구찌는 2004년부터 유니세프와 파트너십을 맺고 불우한 환경에 놓인 어린이를 구제하는데 힘쓰고 있으며, 2009년에는 9월 16일을 ‘Gucci For FFAWN Day’로 정한 뒤 해당 일 수익의 10%를 현대여성진흥기금(FFAWN, 여성들의 자립과 성공을 돕는 기금 단체)에 기부하는 칵테일 파티를 개최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구찌는 2013년 전 세계 여성과 여자 어린이의 교육·건강·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 및 해결을 위해 글로벌 캠페인,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 ; 이하 CFC)’를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구찌의 모기업 케링의 최고경영자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FranFran çoisois Henri Pinault)의 부인이자 배우인 셀마 헤이엑 피노(Salma Hayek-Pinault),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 팝 가수 비욘세 놀즈 카터(Beyonce Knowles-Cater)가 공동으로 창설했다. 배우 이영애는 아시아 배우로서 최초로 CFC의 자문위원으로 임명되었다.
CFC 캠페인은 세계 최초로 설립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플랫폼 회사 캐터펄트(Catapult)가 파트너사로 참여, 온라인 커뮤니티(www.chimeforchange.org)에 가입하는 사람은 누구나 본인이 후원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직접 골라 기부 및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기부금이 운영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7. 구찌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 케링 그룹(Kering Group)
구찌의 모기업 PPR 그룹(피노 프랭탕 레두트 Pinault Printemps Redoute)은 2013년 케링(Kering) 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구 PPR 그룹은 1963년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럭셔리 패션 그룹으로서 2000년 구찌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바 있다. 현재 케링 그룹은 설립자 프랑수아 피노의 아들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이 경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명을 케링 그룹으로 변경한 이후 유통 사업을 정리하고 명품, 의류, 액세서리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다.
2) 연관 브랜드
케링 그룹은 구찌 이외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생 로랑(Saint Laurent),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발렌시아가(Balenciaga), 부쉐론(Boucheron), 브리오니(Brioni),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등의 의류, 액세서리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케링 그룹은 2013년 영국의 영 디자이너 레이블 크리스토퍼 케인(Christopher Kane)의 대주주가 되었고, 뉴욕의 패션 브랜드 알투자라(Altuzarra)에 지분투자를 하며 소주주로 자리매김하는 등 명품 패션을 중심으로 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 생 로랑(Saint Laurent)
생 로랑은 1961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가 론칭한 디자이너 브랜드이다.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컬렉션으로 시작했고 레디투웨어(Ready to Wear) 컬렉션으로 라인을 확장하며 상류층의 특권이던 패션쇼에 젊은 감성을 도입했다. 이브 생 로랑은 르 스모킹(Le Smoking)을 비롯하여 몬드리안 룩(Mondrian Look), 사파리 룩(Safari Look), 시스루 룩(See Through Look) 등 20세기의 중요한 패션사를 써왔다. 2012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만(Hedi Slimane)을 영입하며 이름을 생 로랑으로 변경했다.
·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보테가 베네타는 1966년 미켈레 타데이(Michele Taddei)와 렌초 첸자로(Renzo Zengiaro)가 설립한 이탈리아 브랜드이다. 이탈리아어로 ‘베네토 장인의 아틀리에’를 의미하며 장인이 가죽 끈을 하나하나 엮어 만든 위빙 가죽, 일명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기법으로 만든 백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뉴욕 상류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2001년 2월, 당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Tom Ford)의 추천으로 PPR 그룹(현 케링 그룹)이 인수했다. 2001년 6월 독일 출신의 디자이너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브랜드명이나 로고를 부각하지 않는 ‘은밀한 럭셔리’ 컨셉트로 인기를 모았다. 2014년에는 홈컬렉션을 론칭해 가구, 인테리어 제품으로 라인을 확장했다.
· 브리오니 (Brioni)
브리오니는 1945년 나자레노 폰티콜리(Nazareno Fonticoli)와 가에타노 사비니(Gaetano Savini)가 설립한 고급 남성 슈트 브랜드이다. 1952년, 피렌체에서 최초의 남성복 컬렉션을 열면서 고급 남성복으로 알려졌다. 1995년 뉴욕 57번가에 브리오니 매장을 열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브리오니는 2011년, 미국 소비자 기관인 럭셔리 인스티튜트(Luxury Institute)가 연소득 27만 2천 달러의 미국 남녀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럭셔리 브랜드 순위 지수에서 ‘남성 의류 부문 최고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되었다. 2012년에 PPR 그룹(현 케링 그룹)이 인수했다.
3) 브랜드 가치
구찌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선정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 (Best Global Brands 100)에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랭크되고 있다. 또한 2007년 닐슨사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된 바 있다.
4)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구찌는 2013년 9월 기준 전 세계 460여 개의 직영점을 운영 중이다. 구찌 코리아는 2012년 리노베이션하여 오픈한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를 비롯해 2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8. 구찌 브랜드 특징
1) 이탈리아 전통을 고수하는 구찌
구찌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브랜드로서 이탈리아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온갖 꽃과 곤충이 조화된 구찌의 플로라 패턴에서는 이탈리아의 정열적인 에너지가, 물자가 부족한 시절에 개발된 뱀부 백에서는 이탈리아 특유의 긍정적인 판단력이 엿보인다. 창립자 구찌오 구찌와 그의 세 아들, 손자까지 합세하여 이룬 이탈리아 가족기업이라는 전통 역시 구찌의 개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구찌 가문의 가족기업 이야기는 한때 영화화가 검토되었을 정도로 대담하고 열정적이다.
케링 그룹이라는 거대 패션 기업에 포함되어 있는 현재에도 구찌는 이런 역사와 가치를 잘 보전하고 계승하고 있다. 구찌는 2011년 창립 9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Piazza di Signoria) 메르칸치아 로지아(Loggia della Mercanzia) 궁전에 구찌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박물관 구찌 뮤제오(Gucci Museo)를 설립하였는데 이는 이탈리아 전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구찌의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2) 시대의 아이콘과 함께해 온 구찌
구찌의 다양한 제품 라인들은 유명인사들의 사랑을 받으며 브랜드 인지도를 더욱 높여왔다. 1947년 출시된 구찌의 대표 상품인 뱀부 백은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데보라 커(Deborah Kerr) 등 당시 유명인사들이 애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뱀부 백은 여러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1954년에는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감독의 영화 ‘이탈리아 여행(Viaggio in Italia)’에서 잉그리드 버그먼(Ingrid Bergman)이, 1958년 리처드 브룩스(Richard Brooks)감독의 영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1966년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감독의 영화 ‘욕망(Blow Up)’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가 뱀부 백을 들고 나와 인기를 얻기도 했다.
1953년 출시된 호스빗 로퍼 역시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존 웨인(John Wayne),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배우와 영화감독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가 애용했고, 특히 1960년 영화배우 알랭 들롱이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Purple Noon)’에 구찌 호스빗 로퍼를 신고 나온 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재클린 오나시스가 자주 들어 그녀의 이름이 붙기도 했던 재키 백은 그녀 이전에도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1951년작 ‘유로파 51(Europa 51)’에서 잉그리드 버그먼이 착용하고 등장하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파트너스 활동으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수 있습니다"
'기업&인물inf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라(zara) 브랜드 정보 (0) | 2016.11.29 |
---|---|
도브(DOVE) 브랜드 정보 (0) | 2016.11.29 |
IWC(International Watch Company) 브랜드 정보 (0) | 2016.11.25 |
니베아(NIVEA) 브랜드 정보 (0) | 2016.11.25 |
올림푸스(Olympus) 브랜드 정보 (0) | 2016.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