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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물info

푸마(PUMA) 브랜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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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마의 정의 및 기원


푸마(Puma)는 운동화, 운동복, 운동용품 등을 제작 · 판매하는 독일의 스포츠용품 브랜드(Brand)이다. 1924년 루돌프 다슬러(Rudolph Dassler)와 아돌프 다슬러(Adolph Dassler) 형제가 1924년 7월 1일 헤르초게아우라흐(Herzogenaurach)에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을 설립하며 신발 제조 및 판매 사업을 시작했고 1948년, 두 형제가 사업을 분리하면서 루돌프 다슬러의 ‘푸마(Puma)’와 아돌프 다슬러의 ‘아디다스(Adidas)’로 나뉘었다.


푸마는 1948년 창립자인 루돌프 다슬러의 이름을 따 ‘루다(RUDA)’로 불리었으나 루돌프 다슬러는 보다 더 독립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푸마’라는 브랜드로 개칭했고, 이는 단어 뜻 그대로 야생동물 ‘푸마’의 스피드, 힘, 우아함을 내포한 브랜드 명이었다.


두 회사의 분리 후 푸마는 설립 초창기부터 탈부착 가능한 스터드(Studs)를 장착한 축구화 ‘아톰(Atom)’ 등을 통해 축구 전문 브랜드의 이미지(Image)를 구축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펠레(Pele, 에지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Edson Arantes do Nascimento), 에우제비오(Eusebio, 에우제비오 다 실바 페헤이라 Eusebio da Silva Ferreira) 등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과 함께 한 ‘킹(King)’시리즈(Series)를 출시하는 한편 월드컵(World cup), 올림픽(Olympic), 윔블던(Wimbledon) 등 국제 스포츠 대회를 활용한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넓혀 갔다. 1998년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Jil sander)와 함께한 협업을 비롯한 여러 패션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통해 스포츠 패션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푸마의 탄생 및 창업자


1920년, 아돌프 다슬러는 2명의 신발 제작자와 함께 어머니의 세탁실에서 수제 가죽 스포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23년, 그의 형 루돌프 다슬러가 합류했고, 아돌프 다슬러와 루돌프 다슬러는 1924년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 헤르초게나우라흐(Dassler Brothers Shoe Factory, Herzogenaurach)'라는 이름의 정식 스포츠화 회사를 설립했다. 아돌프 다슬러는 기술 개발 및 제품 생산을 맡고 루돌프 다슬러는 대외 협력 및 경영을 맡았다.


당시 육상, 축구 선수들은 달리기를 멈출 때마다 운동화 안쪽에서 발톱이 꺾이는 고통에 시달렸다. 다슬러 형제는 운동화 바닥에 미끄럼을 방지하는 스터드를 박아, 선수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운동화를 고안해 냈고, 독일 올림픽 팀의 육상 트레이너였던 요제프 바이처(Josef Waitzer)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참가할 국가대표 선수들의 신발을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에 의뢰했다.


다슬러 형제와 요제프 바이처는 국가대표용 신발을 함께 만들게 되었고, 이후 독일 올림픽 대표팀에 다슬러 형제의 신발이 공급 되어 독일 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내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다슬러 신발 = 승리의 신발’이라는 인식과 함께 다슬러 형제의 제품은 최첨단 스포츠 용품으로 인정 받았다. 특히 1936년 베를린(Berlin) 올림픽에서 미국의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James Cleveland Owens)가 다슬러 형제의 신발을 신고 4개의 금메달을 따면서 다슬러 형제의 신발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1948년, 루돌프 다슬러와 아돌프 다슬러 형제는 그들의 신발 공장 사업을 분리했다. 아돌프 다슬러는 가족이 살던 빌라와 큰 공장을 차지했고, 루돌프 다슬러는 회사가 1936년에 사들인 아우라흐 강 상부 뷔르츠부르크가의 작은 공장을 가졌다. 생산을 담당하던 기술자 47명은 아돌프 다슬러의 곁에 남았고 사무실 직원 13명과 일부 프리랜서 판매 직원은 루돌프 다슬러와 함께 했다. 이후 루돌프 다슬러가 푸마를 설립하고, 아돌프 다슬러는 아디다스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푸마’라는 브랜드가 시작되었다.


3. 푸마의 역사


1) 푸마의 시작 ~ 해외진출(1948~1974)

푸마는 설립 초창기부터 축구 전문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1948년 탈부착 가능한 스터드가 장착된 축구화 ‘아톰(Atom)’을 개발했고, 1952년 아톰을 개선하여 슈퍼 아톰을 출시했다. 1956년에는 발 냄새 억제 효과가 있는 안티 박테리아(Anti-Bacteria) 축구화를 최초로 출시했다. 또한 같은 해, 기존의 신발 골을 축구화에 맞게 개조했는데 이는 이후 모든 축구화의 표준이 되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폼 스트라이프(Form Stripe)’라는 측면 스트라이프 디자인을 도입했고,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푸마의 브랜드 로고에도 사용되고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푸마는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푸마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 결승전에서 펠레를 포함한 여러 브라질 선수들에게 푸마 신발을 제공했고,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였던 ‘맨발의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는 4년 후인 도쿄 올림픽에서 푸마의 런닝화를 신고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에우제비오와 함께 출시한 ‘에우제비오 킹(Eusebio King)’ 컬렉션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1970년에는 펠레와 함께한 ‘킹’ 시리즈를 출시했다. 또한 세계적인 축구 스타인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 등을 지원하며 축구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푸마는 1960년대부터 해외 시장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62년, 루돌프 다슬러의 장남 아르민 다슬러(Armin Dassler)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아르민 다슬러는 말가죽을 이용한 ‘콘도르 다슬러 슈즈(Condor Dassler Shoes)’를 개발하여 1964년에는 이 제품 하나로 미국 시장에서 130만 마르크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루돌프 다슬러의 차남인 게르트 다슬러(Gerd Dassler)는 프랑스에 자회사를 설립했고 빈 출신의 디자이너 헬무트 랭(Helmut Lang)과 라이프스타일 라인인 ‘푸마 호비(Puma Hobby)’, ‘푸마 위켄드(Puma Weekend)’를 출시했다. 푸마는 1972년에 이미 128개국에 제품을 수출했고, 전체매출 중 해외 수익의 비율이 60%였다.


2) 아르민 다슬러의 경영 ~ 푸마의 위기(1974~1993)

1974년 루돌프 다슬러의 죽음으로 장남 아르민 다슬러가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아르민 다슬러의 과제 중 하나는 라이벌 브랜드인 아디다스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푸마는 매출의 5~7%를 제품 연구와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2년에는 유연성이 강화된 밑창이 자유자재로 꺾이는 ‘듀오플렉스(Duoflex) 축구화를, 1985년에는 센서(Sensor)와 미니컴퓨터(Mini-Computer)가 탑재된 ‘RS 컴퓨터’ 조깅화를 출시했다.


푸마는 지속적으로 로테어 마테우스(Lothar Matthaeus) 같은 축구 신동들을 발굴하고 지원했으며, 1984년에는 세계 랭킹 750위에 불과했던 테니스(Tennis) 선수였던 보리스 베커(Boris Becker)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1년후 보리스 베커는 17세의 나이로 윔블던(Wimbledon) 테니스대회 우승을 거머쥐면서 푸마는 테니스 용품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86년 푸마는 프랑크푸르트(Frankfurt)와 뮌헨(München) 증권거래소에 주식회사로 상장했다.


1980년대 후반, 푸마는 나이키와 리복의 급격한 성장으로 미국 시장에서 고전해, 결국 적자를 냈다. 그 결과 1987년 다슬러가(家)는 CEO에서 물러났고 주 채권단인 도이치방크(Deutche bank)에 의해 1989년 무역 회사인 코사 리베르만(Cosa Libermann)에 인수되었다. 1990년에는 스웨덴(Sweden)기업 아트리모스(Atrimos)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가 1993년 프로벤투스(Proventus)에게 인수되어 당시 29살이었던 젊은 CEO 요헨 자이츠(Jochen Zeitz)가 부임했다.






3) 푸마의 부흥 ~ 현재(1993~2014)

1990년 푸마의 마케팅 부서를 통해 입사한 후 1993년 CEO로 전격 발탁되었던 요헨 자이츠는, 푸마의 새로운 사업 방향과 재구조화를 위한 단계별 계획을 제시하며 회사를 재정비했다. 요헨 자이츠는 기존 푸마의 전략이었던 규모의 확대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 형성을 통한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 1993년 이래 스포츠 업계는 기술의 평준화가 이루어졌고, 따라서 브랜드 이미지를 통한 경쟁력이 중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디다스는 ‘안전성’, 나이키는 ‘자유’의 이미지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헨 차이츠는 푸마가 공략해야 할 이미지는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의 스타급 선수들이나 스포츠 강국이 아닌 언더도그(Underdog: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여서 경기나 싸움에서 질 것 같은 사람이나 팀) 이미지의 선수나 팀들을 지원했다. 스포츠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푸마의 이미지 또한 이런 언더도그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이 후 제3세계인 자메이카(Jamaica) 출신의 육상선수나 아프리카(Africa)의 축구 선수들을 계속해서 모델로 기용했다. 육상선수로는 우사인 볼트(Usain Bolt), 축구팀으로는 카메룬(Cameroun) 대표팀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푸마는 스포츠 용품을 패션 용품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니즈(Needs)를 파악했고, 각 종목별 스포츠 용품의 전문성과 기능성은 유지하되 라이프스타일(Lifestyle)과 패션을 접목시킨 새로운 제품라인 ‘스포츠 라이프스타일’을 출시했다. 1998년 디자이너 질 샌더(Jil Sander)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다수의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푸마는 스포츠 패션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서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후 영국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일본 디자이너 미하라 야스히로(Mihara Yasuhiro), 후세인 샬라얀(Hussein Chalayan)과의 협업을 통해 스포츠 산업 자체를 패션산업으로 바꿔놓았다. 운동을 즐기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민감한 패셔니스타(Fashionista, 화려하고 눈에 잘 띄는 옷을 입는 이들을 뜻함)들로부터 호평을 받기 시작한 푸마는 스포츠 용품 브랜드를 패션 브랜드로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2007년 구찌(Gucci), 발렌시아가(Balenciaga),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등의 명품 패션 브랜드를 소유한 프랑스의 그룹 PPR(현재 케링(Kering) 그룹)이 푸마의 대주주가 되면서 푸마의 패션브랜드화 경향은 이후 더욱 강해지고 있다.


2010년 요헨 자이츠는 케링 그룹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The Board’s Sustainable Development Committee)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푸마에서의 18년간의 커리어를 마쳤고, 지금은 뷔욤 굴든(Björn Gulden)이 푸마의 CEO를 맡고 있다.


7. 푸마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 케링 그룹

2007년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의 PPR(피노 프렝땅 레두트 Pinault-Printemps-Redoute)' 그룹이 푸마 주식의 27%를 인수하면서 푸마의 대주주가 되었다. 구PPR 그룹이 푸마의 대주주가 되면서, 푸마는 그룹 내의 패션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강화할 수 있었다.


푸마의 모기업 PPR 그룹은 2013년 케링 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구 PPR 그룹은 1963년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럭셔리 패션 그룹으로 2000년 구찌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바 있다. 현재 케링 그룹은 설립자 프랑수아 피노의 아들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cois-Henri Pinault) 회장이 경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명을 케링 그룹으로 변경한 이후 유통 사업 부문을 정리하고 명품, 의류, 액세서리 브랜드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케링 그룹은 구찌 이외에 보테가 베네타, 생 로랑(Saint Laurent), 알렉산더 맥퀸, 발렌시아가, 부쉐론(Boucheron), 브리오니(Brioni),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등의 의류 및 액세서리 브랜드들을 보유하고 있다. 케링 그룹은 2013년 영국의 영 디자이너 레이블 크리스토퍼 케인(Christopher Kane)의 대주주가 되었고, 뉴욕의 패션 브랜드 알투자라(Altuzarra)에 지분투자를 하며 소주주로 자리매김하는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 푸마의 연관 브랜드

푸마는 PPR 그룹 내에 자체적인 그룹으로 존재함으로써 코브라 골프(Cobra Golf), 트레톤(Tretorn) 등의 브랜드 및 푸마의 머천다이징(Merchandising) 업무를 맡는 자회사 브랜든(Brandon)을 보유하고 있다.


① 코브라 골프(Cobra Golf)


코브라 골프는 1973년에 호주의 아마추어(Amateur) 골프 챔피언(Champion)이자 골프 클럽 디자이너였던 토마스 L.크로우(Thomas L. Crow)가 설립한 골프 용품 브랜드이다. 유틸리티 클럽(Utility Club: 아이언과 우드의 중간 조합으로 만든 다루기 쉬운 골프 클럽)이 유행하기 전부터 생산하며 자리를 잡았고 2010년에 푸마에 인수되었다. 고성능 드라이버(Driver), 페어웨이(Fairway), 하이브리드 아이언(Hybrid Iron)뿐만 아니라, 푸마 인수 이후 골프 스포츠와 라이프스타일이 결합된 신발, 의류 및 액세서리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② 트레톤(Tretorn)


1891년 요한 덩커(Johan Dunker)가 스웨덴(Sweden) 헬싱보리(Helsingborg)에서 오버슈즈(Overshoes, 비나 눈이 올 때 방수용으로 구두 위에 신는 덧신 혹은 부츠)를 제작하면서 시작된 신발 브랜드이다. 레저(Leisure)용 신발, 레인 부츠(Rain Boots), 스니커즈와 같은 신발 외에도 테니스 볼 등을 제작하며 고무를 활용하는 제품 생산 및 판매에 특화되어 있다. 2001년에 푸마에 인수되었다.


3)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2013년 푸마의 연간 재무 리포트에 따르면 푸마는 전 세계에 약 1만 8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30억 유로에 달하는 매출을 내고 있다. 또 전 세계 30여 개국에 있는 180여 곳의 공급자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120여 개국에 상품을 유통하고 있다.


4) 브랜드 가치

푸마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2014년 발표된 베스트 독일 브랜드 2014(Best German Brands 2014)에 28위로 랭크되었다.


또한 2011년 디자인어워드<IF(International Forum>에서 부가적인 인쇄나 조립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친환경적 패키지(Package)를 인정받아 패키지 부문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사회책임투자 리서치 연구기관 ‘EIRIS(Ethical Investment Research Services)’에서 뽑은 ‘가장 윤리적인 10대 기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푸마의 기능성 의류 라인인 ‘ACTV’는 2013년 ISPO(스포츠용품박람회: International Trade Show for Sports Equipment and Fashion)에서 스포츠 산업 품질 인증을 받았고, 퍼포먼스 컴프레션 웨어(Performance Compression Wear)부문에서 ISPO 골든 어워드(Golden Awards)를 수상하기도 했다.


8. 푸마 브랜드 특징


1) 스포츠를 패션 아이템으로 확장한 푸마


푸마는 스포츠 용품과 의류를 일상 생활에서도 활용 가능한 패션 아이템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그 변화는 1998년 독일의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와의 협업을 통해 패셔너블한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에 접목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8년 질 샌더 패션 하우스의 직원으로부터 푸마 본사에 전화가 걸려왔다.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가 푸마의 옛 모델인 펠레 ’킹’ 슈즈를 우연히 보고, 스터드가 있는 이 신발을 패션쇼에 사용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푸마에서는 런웨이(Runway)용 ’킹’의 제작을 위해 산모 섬유(종이, 실, 피륙, 나무 따위의 겉에 보풀보풀하게 일어난 섬유)로 된 특수 바닥 창을 생산하기로 했다. 자칫 모델들이 런웨이에서 넘어져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푸마 본사에서는 런웨이용 신발을 단순히 공급할 것이 아니라 푸마 라벨이 붙은 질 샌더 슈즈를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고 이후 이들의 협업이 시작되어 질 샌더-푸마 슈즈가 출시되었다. 이 제품은 출시 첫날부터 신발 구입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예약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푸마는 영국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과 함께 2006년 푸마 맥퀸(PUMA McQueen) 신발 컬렉션을, 2007년에는 다시 고양이와 동물의 해부학적 결합을 사용한 맨캣 아나토미(Mancat Anatomy)를 모티프로 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또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미하라 야스히로와는 2001년부터 협업을 시작하여 2011년 56번째 스니커즈 에디션을 내놓았다.

이외에도 후세인 샬라얀 등의 디자이너와 꾸준히 협업하며 ‘푸마 블랙 라벨(Puma Black Label)’ 라인을 출시하며 통해 스포츠화와 스포츠웨어를 패션의 영역으로 바꿔놓았다.


2) 비주류 스포츠에 주목함으로써 차별화를 도모하는 푸마

푸마는 유명 스포츠 스타에 집중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제3세계 혹은 비주류 스포츠 선수나 팀을 후원하고 함께 성장해나가면서 푸마만의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푸마는 더 나아가 기존의 스포츠 브랜드들이 강조했던 축구, 육상 등 일상적인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터 스포츠나 세일링(Sailing)과 같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스포츠 콘셉트를 제품 디자인에 접목시킴으로써 다른 스포츠 브랜드들과 차별적인 마케팅 전략을 시행했다.


1999년, 푸마는 윌리엄스(Williams) F1팀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푸마의 첫 번째 F1 레이싱 슈즈인 레이스캣(Race Cat)을 탄생시켰고, 2003년 푸마의 모터 스포츠 라인은 의류 분야까지 확대되어 드라이버(Driver)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착용할 수 있는 용품을 공급했다.


처음에는 전문가들을 위한 의류 및 신발 제공을 위해 시작했으나 이후 제품라인이 확대되면서 F1 최고 팀들과의 머천다이징 계약으로 이어졌다. 이후 푸마는 모터스포츠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슈즈와 의류 컬렉션을 소개하고 있다.


2012년 푸마는 F1 중국 그랑프리(Grand Prix) 대회에서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F1 팀(Mercedes AMG Petronas F1 Team)의 니코 로즈버그(Nico Rosberg)와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그가 우승을 차지하여 푸마의 2012 가을/겨울 시즌부터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2008년 세계에서 가장 길고 어려운 항해 레이스 중 하나인 볼보 오션 레이스(Volvo Ocean Race)에서 처음으로 푸마 레이싱 팀이 참가하며 다양한 머천다이징 상품을 제작했을 뿐 아니라 세일링 관련 의류 제품 라인을 보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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