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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물info

나이키 주식회사 브랜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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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이키의 정의 및 기원


나이키(NIKE)는 운동화, 운동복, 운동용품 등을 제작 · 판매하는 미국의 스포츠용품 브랜드이다.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과 필 나이트(Phil Knight)는 1964년에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사(Onitsuka Tiger, 현재 아식스, ASICS)의 기능성 운동화를 들여와 미국 시장에서 판매했다. 1972년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의 미국식 발음을 따 ‘나이키’로 브랜드 이름을 바꿨고, 1988년 이후부터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라는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2. 나이키의 탄생 및 창업자


빌 바우어만과 필 나이트는 미국 오리건 대학(The University of Oregon) 육상팀 감독과 소속팀 선수로 인연을 맺었다. 대학시절에 필 나이트는 중거리 육상선수로 활약했으며, 스탠포드 경영대학원(Stanford Graduate School of Business)을 졸업한 후 공인회계사로 일하면서 1969년까지 포틀랜드 주립대(Portland State University)에서 강의를 했다.


필 나이트는 석사 논문에서 일본의 합리적인 가격대의 기능성 운동화가 당시 독일제 운동화 일색이었던 미국 운동화 산업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 나이트는 학위 취득 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니츠카 타이거사의 운동화에 대한 미국 내 독점 판매권을 획득했다. 필 나이트는 오니츠카 타이거사의 샘플 신발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육상 신발에 관심이 많았던 빌 바우어만 감독에게 보냈다. 신발 샘플을 받아 본 빌 바우어만은 필 나이트에게 동업을 제안했고, 자신이 고안한 신발 디자인을 오니츠카 타이거사에 제공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빌 바우어만과 필 나이트는 선수들에게 고품질의 신발을 공급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1964년 미국 오리건(Oregon)주에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했다.


3. 나이키의 역사


1) 창업 ~ 나이키 이전(1964~1969)

빌 바우어만과 필 나이트는 각각 500달러를 투자해 오니츠카 타이거사의 운동화 200켤레를 주문했다. 회계 법인에서 일하던 필 나이트는 자신의 차 트렁크에 운동화를 싣고 육상 트랙으로 찾아가 선수들에게 판매했다. 빌 바우어만은 오니츠카 타이거사의 운동화를 직접 분해하여 제품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고,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오리건 대학 육상 선수들에게 신겨서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설립 첫 해에 약 8천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듬해에도 판매가 호전되자 빌 바우어만과 필 나이트는 자신들의 직업이었던 육상 감독과 회계학 교수 일을 병행하면서 회사를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1965년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 대학원 동기이자 육상 선수였던 제프 존슨(Jeff Johnson)을 고용해 회사의 관리 업무를 맡겼다. 제프 존슨은 블루 리본 스포츠의 마케팅 소재를 개발하거나 홍보 책자를 제작했다. 그는 회사의 제품 라인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우편 주문 서비스도 개발했다.


1966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Santa Monica)에 첫 번째 매장을 열고 직영판매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웰즐리(Wellesley) 지역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이후 나이키는 미국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 나이키 첫 번째 운동화 코르테즈 탄생 ~ 에어 쿠셔닝 기술 개발(1970~1979)

1970년 빌 바우어만은 와플 굽는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고무 스파이크(Spike, 미끄럼 방지 패턴이 들어간 운동화 밑창)를 개발했다. 와플 제조기에 액체 고무를 부어 만든 고무 스파이크가 장착된 운동화는 기존 운동화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지면과의 마찰력이 강하다는 특성(미끄러움 방지와 추진력 향상)이 있었다. 빌 바우어만은 탄생 유래를 따 이 기술의 이름을 와플솔(Waffle Sole)이라고 정했다. 1972년 빌 바우어만은 자신이 개발한 와플솔을 활용해 코르테즈(Cortez)라는 운동화를 개발해 시장에 선보였다.


1972년부터 블루 리본 스포츠가 독자적인 제품을 생산하면서 오니츠카 타이거사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결국 블루 리본 스포츠는 오니츠카 타이거사와의 협력 관계를 종료하고 독자적인 브랜드 ‘나이키’를 만들었다. 1971년 새로운 브랜드인 나이키의 로고 디자인을 고심하던 필 나이트는 포틀랜드 주립대에서 그래픽 아트(Graphic Arts)를 전공하던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캐롤린 데이비슨은 몇 가지 디자인을 고안해 제시했고, 필 나이트는 그리스 로마의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날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로고를 최종 선택했다.


이 로고 디자인이 나이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스우시(Swoosh, 휙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는 의미)’였다. 당시 필 나이트는 캐롤린 데이비슨이 디자인한 것들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멕시코 공장에서 회사 로고가 결정되지 않아 신발을 생산하지 못하던 상황이어서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했던 디자인을 선택했다고 한다.


코르테즈 개발 이후, 빌 바우어만은 나이키의 첫 번째 운동화를 신고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찾았다. 빌 바우어만은 자신의 제자이자, 장거리 육상경기 7종목에서 미국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육상 선수 스티브 프리폰테인(Steve Prefontaine)을 최초로 후원했다. 이후 나이키는 자사의 제품을 육상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출전한 육상 선수 스티브 오벳(Steve Ovett)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신기록을 세웠다. 1983년 여자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마라토너 조안 베노이트 사무엘슨(Joan Benoit Samuelson)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1970년대 말에 나이키는 미국 항공 우주국(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의 직원이었던 프랭크 루디(Frank Rudy)와 함께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 일정한 압력을 가하면 자연스럽게 눌려지는 에어 쿠셔닝 기술(Air Cushioning Technology)을 개발했다. 1979년 나이키는 이 기술을 활용해 에어 쿠셔닝 기술이 적용된 테일윈드(Tailwind)를 출시했다.


1970년대 미국에 조깅 열풍이 불면서 운동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나이키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나이키는 미국의 스포츠 신발 및 의류, 용품을 대표하는 선두주자가 되었다.


3) 마이클 조던과 후원 계약 체결 이후(1980~2013)

나이키는 1980년대 중반 미국 시장에 불어온 에어로빅 열풍을 예측하지 못해 에어로빅 슈즈를 출시한 리복(Reebok)에게 선두자리를 내주었다. 이에 나이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1984년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미국 프로농구)의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팀 소속이었던 신예 선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농구화 및 의류에 대한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1985년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을 위해 에어 조던 원(Air Jordan 1)을 개발했는데, 마이클 조던이 에어 조던 원을 착용하고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여 운동화 판매율이 크게 증가했다.


1988년 나이키는 일반 사람들에게 조깅을 해야 하는 육체적 · 정신적 동기를 부각시키기 위해 ‘저스트 두 잇(일단 해봐!라는 의미)’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광고 캠페인의 감성적인 접근은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나이키가 운동화는 물론 스포츠 의류사업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나이키는 지금까지 이 광고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왔다.


1990년 나이키는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 교외에 ‘나이키 월드 캠퍼스(Nike World Campus)’라는 본사 건물을 세웠고, 포틀랜드 지역에도 매장과 극장을 결합한 900m² 규모의 스포츠용품 전문 매장 ‘나이키 타운(Nike Town)’을 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나이키는 뛰어난 운동 선수나 팀과 후원 계약을 맺었다. 나이키는 1992년에 미국 육상 대표팀과 장기 독점계약을 체결했고, 1995년에는 브라질 및 미국 남자 축구 대표팀과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1996년에 나이키는 타이거 우즈(Tiger Woods)와 연간 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2000년 나이키는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했던 미국과 호주의 육상 선수단, 한국의 야구단 등 전 세계 25개 종목의 선수 2천여 명의 유니폼과 운동화를 디자인했다. 특히 모리스 그린(Maurice Greene, 미국)은 100m 육상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 후 나이키 운동화에 입을 맞춘 뒤 관중석으로 이를 집어 던지는 세레모니(Ceremony)를 펼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2005년 나이키는 운동화 바닥 전체를 감싸고 있던 밑창을 마모될 특정 부분에만 부착하여 무게를 절감한 ‘나이키 프리(NIKE Free)’를 선보였다. 2006년에는 나이키를 단순한 신발 제조업체에서 디지털 스포츠업체로 변화시킨 ‘나이키 플러스(NIKE+)’를 출시했다. 나이키 플러스는 애플(Apple)과 협업해서 만들었는데, 운동화에 센서를 부착하여 아이팟(iPod)이나 아이폰(iPhone)을 이용해 사용자의 운동 거리, 운동 시간, 소모한 칼로리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






4. 나이키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1) 에어 쿠셔닝 기술(Air Cushioning Technology)

에어 쿠셔닝 기술은 미국 항공우주국의 직원이었던 프랭크 루디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으로, 외부 압력에도 원상태로 돌아가는 압축 공기의 성질을 이용해 1979년 처음 고안되었다. 나이키는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 자연스럽게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운동화 밑창을 만들었다.


1979년 나이키는 이 기술을 적용해 테일윈드(Tailwind)를 출시했다. 테일윈드는 나이키의 두 가지 대표 기술인 와플솔 기술과 에어 쿠셔닝 기술이 함께 적용된 나이키 최초의 마라톤화였다. 1982년 나이키는 에어 쿠셔닝 기술이 적용된 최초의 농구화 에어 포스 원(Air Force 1)을 개발했다. 그 후 나이키는 다양한 운동 상황에 맞춘 에어 쿠셔닝 기술을 개발해 자사의 운동화에 적용시켰다.


2) 나이키 플러스(NIKE+)

2006년에 출시된 나이키 플러스는 애플의 디지털 센서와 나이키의 제품을 결합한 상품으로, 사용자의 운동 행위를 측정하거나 측정한 데이터를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사용자들은 자가 측정 및 경쟁을 통해 스스로 운동 실력을 점검할 수도 있고, 서로서로 운동 노하우를 공유할 수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이키 플러스 농구화(NIKE+ Basketball), 나이키 플러스 트레이닝화(NIKE+ Training)가 출시되었고, 최근에는 나이키 퓨얼(NIKE Fuel) 및 나이키 플러스 퓨얼밴드(NIKE+ Fuelband)도 출시되었다.


① 나이키 플러스 농구화


나이키 플러스 농구화는 신발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농구화를 신은 사람이 농구 코트에서 얼마나 높이 점프를 했고,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 등을 측정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매 경기마다 통계치를 추적할 수 있고, 활동량에 따라 퓨얼(Fuel, 연료)이 채워지도록 고안되었다. 제품 사용자의 경기분석 결과를 SNS상에서 공유할 수도 있다.


② 나이키 플러스 트레이닝화


나이키 플러스 트레이닝화는 운동화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점프, 스텝 및 세트 반복 횟수 등을 측정할 수 있고, 운동량에 따라 나이키 퓨얼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런 데이터 값은 나이키가 별도로 제공하는 나이키 라이브러리(NIKE Library) 서비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이키 라이브러리는 사용자가 집중해서 운동할 수 있도록 자세한 운동 가이드를 함께 제공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③ 나이키 퓨얼과 나이키 플러스 퓨얼밴드


나이키 퓨얼과 나이키 플러스 퓨얼밴드는 운동 종목에 상관없이 활동 양에 따라 퓨얼이 채워지는 시스템으로 사용자가 센서를 몸에 지니고 움직이는 형태로 고안되었다. 3축 가속도계(3-axis accelerometer)를 이용해 사용자의 활동 부분을 기록하고 시간과 스텝, 칼로리 및 나이키 퓨얼 값을 측정할 수 있다. 센서가 달린 손목 밴드 형태의 퓨얼 밴드는 휴대성이 좋고, 연료 단계에 따라 디지털 화면에 수치와 색상이 단계 별로 표시되므로 사용자의 운동량을 쉽게 알 수 있다.


5. 나이키의 대표 상품 라인


나이키 제품들은 소비자의 운동 패턴에 따라 나이키 액션 스포츠, 육상 트레이닝, 야구, 축구, 미식축구, 러닝, 스포츠 의류, 여성복, 디지털 스포츠 등 크게 9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각 카테고리 내에는 운동화 및 운동복, 그리고 여러 가지 운동용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서 나이키의 대표적인 상품은 창업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연구와 개발에 힘써 온 운동화이다.


1) 나이키 에어 포스 원(NIKE Air Force 1)

1982년에 개발된 나이키 에어 포스 원은 나이키 에어 기술이 적용된 첫 번째 농구화로 주목 받았다. 당시 농구선수들은 딱딱한 바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켤레의 양말을 신었다. 나이키의 에어 기술은 농구 선수들의 잦은 가속과 점프, 착지 동작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했다. 1982년에 처음 선보인 나이키 에어 포스 원은 발목이 높은 '하이 버전(High Version)'으로 되어 있는데 정강이 뼈에 과한 하중이 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벨크로(Velcro)타입의 발목 스트랩(Strap)을 부착한 것이 특징이다.

나이키 에어 포스 원은 운동선수를 위한 기능성 운동화로 출시되었지만, 일반인들도 즐겨 신는 아이템으로 확산되었다. 이 제품은 여러 가지의 색상과 재질, 그리고 아티스트 및 운동 선수들과의 합작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으로 출시되었다. 뉴욕 할렘(Harlem) 힙합 팬들로부터 열성적인 지지를 받아 한때 ‘업타운(Uptow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 에어 조던(Air Jordan)

에어 조던은 마이클 조던이 직접 제작에 참여했던 나이키 계열사인 조던 브랜드의 농구화이다. 에어 조던 원은 1984년에 제작되었는데, 실제로 마이클 조던이 NBA 데뷔 때 경기장에 신고 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당시 NBA는 농구화에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을 두 가지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어 대다수 선수들은 흰색 농구화를 주로 신었다. 에어 조던 원은 마이클 조던이 속해 있던 시카고 불스팀의 유니폼 색상을 응용해 흰색과 빨간색, 검은색으로 디자인 되었다. 이것은 NBA 규정에 위배되는 색상의 적용이었다.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 경기 때마다 벌금을 감수하면서까지 에어 조던 원을 후원함으로써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나이키는 1985년부터 에어 조던을 공식 출시했고, 해마다 에어 조던 후속 제품들을 선보였다. 2008년에 발표된 ‘에어 조던 23’은 나이키의 친환경 정책인 컨시더드 디자인(Considered Design)이 적용된 최초의 제품이었다. 친환경 소재와 마이클 조던의 지문 모양을 본 떠 만든 밑창을 신발에 적용하는 등 상징적인 디자인들이 채택되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농구 열풍이 불면서 나이키 에어 조던이 주목을 받았고, 전국의 농구장과 길거리에서 이 신발을 신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3) 나이키 에어 맥스(NIKE Air Max)

나이키 에어 맥스는 1987년에 나이키 디자이너인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가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러닝화이다. 에어 쿠셔닝 기술이 광범위하게 적용되었고 시각적으로 에어 부분이 드러난 점이 특징이다. 이 제품의 후속 모델인 ‘에어 맥스 90’은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의 대표 아이템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후 20여년 동안 나이키는 에어 맥스 95, 97, 에어 맥스 360 등을 선보였고 2013년에는 에어 맥스 플러스를 출시했다.


4) 머큐리얼 베이퍼(Mercurial Vapor)

머큐리얼 베이퍼는 1998년에 브라질의 축구 황제 호나우두(Ronaldo)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축구화이다. 호나우두의 스피드를 디자인으로 시각화했고, 무게가 가볍다는 점이 특징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나이키는 호나우두에게 머큐리얼 베이퍼를 후원했고 이 제품은 15년 동안 다양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디디에 드로그바(Didier Drogba), 프랭크 리베리(Franck Ribery) 등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이 이 제품을 신고 경기를 했다.


6. 나이키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 나이키 사

빌 바우어만과 필 나이트가 1964년에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했고, 1972년에는 독자적인 기술의 제품을 기반으로 나이키 사가 설립되었다. 1980년 12월에 나이키는 주식상장 기업이 되었고, 2005년에는 창업자의 뒤를 이어 외부 인사였던 윌리엄 페레즈(William Perez)가 나이키의 CEO로 영입되었다. 2006년 나이키는 1979년부터 나이키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한 마크 파커(Mark Parker)를 부사장에서 CEO로 승진시켰다.


2) 나이키의 관련 브랜드

현재 나이키는 컨버스(Converse), 헐리 인터내셔널 LLC(Hurley International LLC), 나이키 골프(NIKE Golf) 같은 자회사를 설립하여 다양한 스포츠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 컨버스(Converse)

컨버스는 마르퀴스 밀즈 컴버스(Marquis Mills Converse)가 1908년에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의 노스 앤도버(North Andover)에 설립한 브랜드로, 일반인용 신발을 시작으로 선수용 테니스화를 생산했다. 이후, 컨버스는 미국의 전통적인 운동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나이키는 2003년 컨버스를 인수했다.


· 헐리 인터내셔널(Hurley International LLC)

헐리 인터내셔널은 밥 헐리(Bob Hurley)가 1981년에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의 코스타 메사(Costa Mesa)에 설립한 브랜드로 서핑, 스케이트 보딩과 같은 다양한 액션 스포츠 제품들과 청소년용 스포츠 의류 및 운동화 등을 선보이고 있다. 나이키는 2002년 헐리 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 조던 브랜드(Jordan Brand)

나이키 계열사인 조던 브랜드는 마이클 조던이 운동화 및 운동 의류 제작에 직접 참여한 브랜드로, 1997년에 처음 선보였다. 이후 조던 브랜드는 농구, 미식축구, 야구 등 다양한 스포츠용품들을 출시하며 성장했고, 지역 커뮤니티 사업으로 교육과 스포츠 및 창의성 부분에 투자하는 윙즈(WINGS)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나이키 골프(NIKE Golf)

오리건주 나이키 본사에 위치한 나이키 골프는 골프용품, 의류, 골프공, 신발, 가방 및 액세서리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브랜드이다.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의 후원 브랜드로 알려져 있는 나이키 골프는 골프선수들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3)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나이키는 전 세계적으로 약 4만여 명의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 비버튼(Beaverton)에 위치한 본사에는 7천 명이 넘는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4) 브랜드 가치

나이키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선정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100)’에 매년 상위에 올라 있다. 나이키는 전 세계 스포츠용품 브랜드 중에서 가장 높은 브랜드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2008년 나이키는 포춘지(Fortune)가 선정한 의류산업 부문에서 3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기후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주관하는 친환경 기업평가에서도 2007년 ~ 2012년까지 6년 연속 의류 및 액세서리 부문에 1위로 선정되었다. 나이키는 유니레버(Unilever)를 비롯해 유피에스(UPS), 리바이스(Levi’s), 로레알((L'Oréal)과 함께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높은 사업 성장률을 달성하면서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킨 상위 5개 기업으로 랭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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